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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 제대로 질 줄 안다는 것의 힘
작성 : 2016년 03월 17일(목) 16:20

알파고 명예9단 이세돌 5국 기자회견 모습 / 사진=구글 제공

[스포츠투데이 윤지혜 칼럼] '알파고'에게 패배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1200개의 CPU로 연결된 그의 창조목적은 게임을 즐기는 것도 아닌 오로지 '승리를 위하여'이니까. 제4국에서 이세돌 9단의 78수 이후 프로 중의 프로의 면모를 보였던 알파고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연발한 까닭이기도 하다.

"질 자신이 없어요"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승리한 이후 사람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던 이세돌 9단의 어록 중의 하나다. '이길' 자신이 아니라 '질' 자신이다. 바꿔 말해, 이기는 데 있어서 자신이 있고 말고는 큰 상관이 되지 않는단 이야기다. 어찌됐든 바둑도 하나의 승부이기 때문에, 그 승부의 판에 오른 이상, '승리'가 목표인 건 당연지사다.

문제는 졌을 경우다. 아무리 아름다운 승부였다 할지라도 패배는 항상 아프다. 가슴 한 구석에 진하고 오랜 여운을 남긴다. 승리의 것은 짧고 굵으면서 패배의 것은 왜 그리 길고 또 굵기까지 하는지. 이는 결국 상대에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는, 스스로를 향한 혹은 주변 사람들을 향한 부끄러움이기도 해서, 흔히 우린 '패배를 잊지 않고 더욱 정진하여 설욕(雪辱, 부끄러움을 씻다)하겠다'라고도 한다.

이세돌이 질 자신이 없다고 한 데엔, 물론, 최상위권 수준의 바둑기사다운 패기와 자신감, 승부욕이 포함되어 있었을 테다. 하지만 무엇보다 패배가 주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알기에, '질 자신이 없다'는 그의 솔직한 심사가 반영된 표현이라 이해하는 게 옳지 않을까.

이기기 위한 최선의 승률로 세팅되어 있는 인공지능이라지만, '바둑'은 아직 내줄 수 없는 사람의 영역이었다. 겉보기엔 두 사람이 흑돌과 백돌을 바둑판의 임의의 점에 번갈아 놓으며 더 많은 집을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는, 단순한 구조일 수 있다. 하지만 한 판에 수없이 많은 수법들이 나올 수 있어서 마주앉은 두 사람의 바둑실력뿐 아니라 심리전도 더없이 중요한, 한 마디로 인간의 능력이 최대한으로 확장되고 활용되는 게임인 것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바둑계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게 내리 세 판을 졌다. 바둑계는 단연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인공지능의 능력을 기정사실화하는 게임의 결과에 할 말을 잃거나 그를 두고 비아냥거렸다. 누구보다 절망적이고 암담하고 혼란스러웠을 이는, 그 '패배'의 전면에 나서 있고 승리의 기약 없이 두 판을 더 치러야 하는, '질 자신이 없다'던 이세돌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질 자신이 없는' 쪽은 이세돌 9단이 아닌 우리들이었다. 우리가 알파고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에 그저 위압감만을 느끼고 있는 사이, 이세돌은 세 번의 패배를 차근차근, 제대로 소화시키며 제4국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컴퓨터라도 허점은 있다,(백보다 흑을 어려워하는 것 같고 자신이 생각지 못한 수가 나오면 대처능력이 약간 떨어진다는 점), 세 번의 대국에서 조금씩 드러나기도 했고. 그가 내리 세 판을 지면서 얻은 상대에 관한 정보였다. 확실하진 않지만 불확실하다고 해서 못해볼만한 건 또 아니잖은가.

제4국에서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이끌었던 78수는 이렇게 탄생했다. 알파고는 이 계산되지 않은, 불확실한 경우의 수(알파고의 입장에서)에 대해 오류로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 수마다 방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밀한 계산을 해냄으로써 좀 더 승리할 가능성이 큰 위치를 적확하게 가려낸다는 것은, 그만큼 강력하고 과감하면서 또 그만큼 유연하지 못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어 분석결과 승리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과감히 돌진할 수 있는 것도 알파고고, 상대방이 혹여 미리 준비하지 못한 수, 즉, '도박'이라고까지 여겨질 만한 수를 쓰는 데에 쥐약인 것도 알파고다. 비록 워낙 질과 양이 뛰어난 정보를 가지고 있어 그 쥐약이라 불리는 경우 자체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만. 그래서 제4국의 78수가 더더욱 신의 한 수라 여겨지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알파고가 만들어진 목적은 대국에서의 '승리'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다. 그에게 패배란 애초부터 계산되어 있지 않은 영역이다. 매순간 확실한 판단을 구하고 불확실한 요소들은 잽싸게 결정짓고 정리해버리려 하는 그의 습성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알파고는 이세돌의 78수에 일종의 버그형태와 같은 대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는 일'을 제대로 학습하지 못했으니 패색이 조금이라도 짙은 수를 그가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세돌 알파고 5국 현장 / 사진=구글 제공


알파고와 이세돌의 차이, 바둑의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아직 따라잡지 못한 사람의 것은 '제대로 질 줄 아느냐 모르느냐'의 대목이 아닐까 싶다. 알파고는 제4국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The result "W+Resign" was added to the game information(백불계승의 결과가 게임 정보에 추가되었다)'라는 말을 남긴다. 인공지능은 '지는 일'을 통해 단순히 정보를 늘리는 데 그친다. 하지만 사람은 어떠한가. '지는 일'을 통해 단순한 지성이 아닌, 마음의 크기가 늘어나는 일을 경험한다. 성장을 경험하는 것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결과로만 말한다면 이세돌은 제5국에서 다시 한 번 쓰라린 패배를 경험했다. 이세돌에게도 창조의 목적을 붙인다면 무엇일까. 승리나 패배라는 경기 하나하나의 결과에 절대 좌우될 수 없는 바둑기사로서의 삶, 그 자체에 붙는 존엄성이다. 승패보다 더 큰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존재가 '사람' 아니던가. 그래서 질 줄 알면서도 도전했고 불리한 줄 알면서도 흑돌을 잡았으며 제대로 지기도 했고 그 힘을 가지고 제대로 이기기도 했던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은 상당히 오랫동안 우리들, '사람'의 기억에 남으리라.

윤지혜 칼럼니스트


정성래 기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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