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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CEO] 희망을 따라 K, 카페 띠아모 김성동 대표
작성 : 2013년 10월 11일(금) 14:55
칼럼니스트 이현경

‘소설 CEO’는 CEO들의 다양한 일화를 인터뷰 형태가 아닌 소설로 만나볼 수 있는 코너다. 실제인물들의 성공 스토리를 소설 형태로 기획한 것은 한국언론사상 스포츠투데이M이 처음이다. 본지는 그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좀 더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도록 이 코너를 마련했다. 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카페 띠아모’의 CEO 김성동씨다. 편집자 주



K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나는 헛웃음이 났다. K의 뒤로 장마비가 들이쳤다. 이제 봄이 왔나보다고 말하며 떠난 K가 여름에 돌아 왔다. 그러니까, K의 사업은 이로써 세 번째 실패를 맞았다. 차량용 안마기, 찜닭 전문점, 그리고 삼겹살 프랜차이즈까지 그야말로 완전히 끝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빚이 적다는 것. 그래서 빚쟁이가 이 집까지 찾아올 형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신세 한 번만 더 지자. 진짜 갈 데가 없더라.”

나는 K의 커다란 가방을 건네 받아 방으로 들여놓았다. 이내 신발을 벗고 방으로 따라 들어온 K가 양말과 윗옷을 벗으며 말했다.

“너 빨랫감 있지? 다 내놔. 한번에 빨아버리게.”

나는 고갯짓으로 방 구석에 밀어놓은 옷 더미를 가리켰다. K는 자신의 티셔츠와 내 옷을 한데 그러모아 세탁기로 가지고 갔다. 다시 의자에 앉아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다가 이내 멈추었다. 몇 줄 쓰지 않은 워드 창을 끄고 만들어 둔 PPT를 다시 불러왔다. 사장과 임원진을 위한 발표회인 만큼 허술하게 작업할 수가 없었다. 다시 자료를 찾았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공모전 날짜가 신경 쓰였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 도저히 속도가 붙지 않았다. 어떻게든 끝이라도 내자고 생각했지만 이야기의 완성은 한참 멀어보였다. 차라리 내지 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제출을 못한다면 스스로를 끔찍해 할 것 같았다. 늪에 빠진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냐?”

세탁기를 다 돌린 K는 내게 물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대신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모니터 옆에 붙여놓은 포스트 잇이 파르르 떨렸다. 포스트 잇에는 영어 인강 시간과 자격증 시험 접수 일정 등이 적혀 있었다. 맨 끝에는 공모전 일정이 적혀 있었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몇 년 째 갈망해왔지만 한 편을 완성해 본 적은 손에 꼽았다. 매일 먹고 사는 일에 치여 미루기 일쑤였다.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자괴감은 날로 깊어지기만 했다. K는 모니터와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있는 내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자신의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러곤 부엌으로 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고기 볶는 냄새가 풍겨왔다.

“밥이라도 먹고 해.”

얼마나 지났는지 뒤를 돌아보니 K가 상을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상에는 고추장으로 양념해 볶은 삼겹살과 밥이 올려져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오늘 눈뜨고 나서 아무것도 안 먹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K는 내가 마주앉자 수저를 들고 먼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나도 밥 위에 고기를 올려 크게 한 술을 떠 넣었다. 예민해있던 신경이 조금 누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설거지까지 해놓고 낮잠을 잔다며 누운 K를 보니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나와 K는 대학 동기였다. 과는 달랐지만 같은 교양 과목을 들었고, 같은 조가 되어 과제를 해야 했다. 학기말, 1학점 짜리에 고리타분한 방식을 고수하는 시간 강사의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들은 없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조 과제는 귀찮기만 했다. 의욕 없는 사람들끼리 뭉쳐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런데 K는 주변 사람들이 무표정해도 넉살 좋게 웃곤 했다. 실없는 놈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론적으로 우리 조가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K의 유쾌함 덕분이었다. ‘어차피 해야 되는 거 즐겁게 해보자’며 웃던 K.

K는 생각지도 못한 데서 아는 부분이 많았다. 직접 몸으로 뛰지 않으면 모를 일들이었다. K는 생생한 정보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그에 대한 역할을 분배했다. 그 뒤의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풀렸다. 우리는 이후 종종 만나 맥주를 마시는 사이가 됐다. 같이 조 활동을 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장소는 대개 학교 앞의 저렴한 술집이었다. 다같이 어울려 취한 밤이 수두룩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끝까지 남은 멤버는 나와 K뿐이었다. K는 술에 취하면 ‘희망의 나라로’를 흥얼거렸다. K는 ‘배를 저어가자, 험한 물결 건너 저편에… 희망의 나라로…’라는 가사를 나지막이 말하는 듯이 불렀다. 나는 그 노래가 완전한 K의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는 종종 K가 내 자취방으로 와 밥을 먹거나 술을 먹었다. K는 고시원에 살고 있었다. 언제 오더라도 절대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찌개거리나 반찬거리를 조금씩 챙겨오기도 했고, 하다 못해 반쯤 먹은 반건조 오징어포라도 들고 오기 마련이었다. 눈에 띄지 않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신문 배달, 세차장 아르바이트 같이 고된 일이 대부분이었다. 몸이 피곤해도, 기분 나쁜 일을 당해도 유쾌하게 얘기를 풀어내는 K에게 이런 말을 종종 했던 것 같다. ‘너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니’ 그러면 K는 ‘너는 뭐가 그렇게 재미없니’ 라고 되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우리는 이따금씩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 나는 임용고시를 준비했고, K는 베이커리 회사와 아이스크림 회사 영업부에서 직장 생활을 경험했다. 그때만 해도 K가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나아 기르며 안정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니던 아이스크림 회사가 어려워지자 K는 사표를 내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또다시 K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안마기를 팔기 위해 몇 군데 택시 회사를 돌고 왔지만 정작 수금이 된 곳은 거의 없었다. 찜닭 전문점은 매출이 조금 오르자 물류 공장을 차리려 하다가 계획이 없어지면서 가게를 넘겨야 했다. 삼겹살 프랜차이즈는 1년 만에 매장 스무 개를 오픈할 정도로 성장 가도를 달리는가 싶더니 구제역 파동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결국 K는 아내, 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일이 잦아졌다. 내 집에도 며칠을 묵기도 했다. 나는 그 사이 삼 년 동안 준비하던 임용고시를 그만두고 일반 기업체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같이 있으면 행복하다고 느꼈던 사람과의 결혼 생활은 이 년 만에 정리됐다. K와 나는 그렇게, 어떤 방향으로든 꾸준히 실패를 거듭하며 살고 있었다.
-2부에 계속


조병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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