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선의 복싱킹] 에반더 홀리필드(Evander Holyfield)는 1962년 10월 10일 미국의 앨라배마 아트모어 농장지대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올해로 만 53살이 된다.
홀리필드가 8살 되는 때, 그는 복싱스승인 카터 모건을 만난다. 1970년대 초반은 미국의 인종갈등이 심화되었던 시기였다. 비록 카터 모건은 백인, 에반더 홀리필드는 흑인이었지만, 카터모건은 "링 위에서 흑백은 구분되지 않으며, 단지 강자와 약자만이 존재할 뿐"이라며 홀리필드를 가르쳤다. 그리고 "너는 헤비급 세계챔피언이 될 녀석"이라고 예언했다.
태어나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적이 없는 홀리필드에게 카터 모건은 스승이기 이전에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홀리필드는 그의 가르침 하나하나를 체화하면서 미국 주니어 그룹에서 일인자로 성장했다. 꼭 한번 패배한 적이 있는데 이때 카터 모간은 "인간은 패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라며 그를 격려했고, 이 말은 그의 권투인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아쉽게도 카터 모건은 홀리필드가 16살 되던 해 일찍 유명을 달리하였지만, 카터 모건의 아들 슬레스 모건이 부친의 유언대로 홀리필드의 코치를 맡는다. 슬레스의 지도 아래 홀리필드는 아마추어복싱 160승 75KO 전적으로 아마추어 미국 대표후보로 선발된다. 여기에서 홀리필드는 그와 운명의 라이벌이 되는 마이크 타이슨(Mike Tyson)을 처음 만나게 된다.
사진=1997년 6월 28일 에반더 홀리필드와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 포스터.
이때 필자도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센터(미국선수촌)에서 전지훈련 중이어서 미국대표팀과 훈련을 같이 했다. 필자가 만났던 홀리필드는 성격이 좋고, 우리나라 대표 팀에게도 서글서글한 좋은 인상으로 친절하게 대했다. 타이슨은 그때도 건들건들하면서 큰 카세트를 어깨에 얹고 춤을 추면서 흑인 특유의 유쾌함을 보여주었다.
홀리필드와 타이슨은 같은 라이트헤비급이었다. LA올림픽(1984년) 최종선발전을 앞두었기 때문인지 두 사람은 친한 사이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후 LA올림픽에서 미국대표팀을 만났을 때, 타이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홀리필드가 올림픽에 출전했다.
LA올림픽에서 홀리필드는 예선 3게임을 KO로 이기고 승승장구,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 상대는 뉴질랜드의 캐빈 배리. 이 경기에서 그는 상대를 KO로 쓰러트렸지만, KO펀치가 종소리가 울린 다음에 작렬했다는 심판진의 결정에 따라 실격패를 당한다. 홀리필드는 완벽한 금메달 유망주였지만 동메달을 따고 LA올림픽을 마감한다.
동메달에 그쳤지만 그는 LA올림픽의 화제 메이커가 되었다. 준결승전에서 운 좋게 반칙 승을 거둔 캐빈 베리는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리는 레프리를 거부하고 오히려 홀리필드의 팔을 추켜올림으로 그가 진정한 승자임을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시상식에서도 금메달리스트가 자신의 시상대를 홀리필드와 공유하는 드라마틱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LA올림픽 후 홀리필드는 21세 나이에 프로에 데뷔한다. 프로 전적은 44승10패2무승부. 홀리필드는 처음에 라이트헤비급으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크루저급에서 WBA, WBC, IBF 타이틀을 획득한 뒤 헤비급으로 올라가서 또 한 번 WBC, WBA, IBF헤비급 챔피언이 되었다.
1997년 6월 28일 에반더 홀리필드와 마이크 타이슨의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 매치 경기 장면. / 사진=유튜브 캡쳐(https://youtu.be/fCJtMij_57c)
홀리필드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경기는 마이크 타이슨과의 혈전이다. 1997년 6월 28일 세계 헤비급 챔피언 타이틀 매치가 벌어졌다. 31살의 타이슨과 35살의 홀리필드. 타이슨은 이 경기에서 힘이 달리자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초유의 사태를 유발시켜 실격패를 하고 말았다.
이 경기 이후 홀리필드는 '링 위의 신사', 타이슨은 '핵이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날 경기는 '핵이빨'에 물려 떨어진 '링 위의 신사'의 귀 조각이 1600만원에 팔렸다는 에피소드도 남겼다.
타이슨은 16년 후인 2013년 2월 홀리필드와 만나 그때의 일을 사과하고 포옹을 나누었다. 그리고 토크쇼에 같이 출연, 돈독한 우의를 팬들 앞에서 과시했다. 뿐만 아니라 홀리필드의 조미료사업에 대해 의견을 나눌 정도로 친해졌다.
사진=에반더 홀리필드, 마이크 타이슨 등 역대 복서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Champs(2015)' 포스터.
2000년 이후 홀리필드는 경기력이 기울기 시작한다. 리딕 보우와 마이클 무어러에게 판정패를 당하고 링사이드에서는 "홀리필드의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리딕 보우와의 2차전 때부터 그는 이미 100%의 홀리필드가 아니었다. 매 경기 점점 몸이 망가져가고 있는 데도, 홀리필드는 그 몸을 가지고도 자신보다 10살 이상 젊은 선수들과 싸웠다. 급기야 미국 복싱위원회에서는 홀리필드의 복싱 라이선스를 정지시키기에 이른다.
2012년 미 대선 공화당 후보 밋 롬니(68) 전 매사추세츠주지사가 지난 5월 시각장애인 돕기 자선 복싱에서 WBC(세계권투평의회) 전 헤비급 챔피언 에반더 홀리필드(53)와 권투 대결을 했다. 이 날 경기에서 롬니 전 주지사는 2라운드를 버틴 끝에 기권했다. / 사진=유튜브 영상 캡쳐(https://youtu.be/faRE7ccUfwM)
홀리필드는 지난해 6월 뉴욕에서 은퇴를 선언한다. "이제 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살아가겠다"라는 게 은퇴의 변이었다. 몇 번의 은퇴 번복 소동을 빚었던 전력을 의식한듯 "이제 나는 더 이상 얻어맞고 싶지 않다. 정말 끝이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2개월 후 네바다주 복싱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표면상 홀리필드는 링을 떠났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여전히 링 주위를 맴돌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유명 정치인과 자선 경기를 가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홀리필드는 2012년 미국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한 68세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맞붙었다. 시각장애인 돕기 자선 복싱 경기였는데, 물론 롬니 전 주지사가 2라운드를 버틴 끝에 기권하고 말았다. 이날 경기로 100만달러가 모금되었으며, 이 후원금으로 4만명의 시력을 찾아주는 돕기운동이 현재 진행 중이다.
'세기의 대결'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미국·왼쪽)와 매니 파퀴아오(필리핀·오른쪽)의 경기는 12라운드 동안 화끈한 펀치 없이 밋밋한 경기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이 날 경기는 메이웨더가 판정승으로 승리했으나 홀리필드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파퀴아오가 이 싸움을 지배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며 파퀴아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5월에는 메이웨더와 매니 파퀴아오 경기를 관전한 후 미국 방송 스포츠센터와 인터뷰를 갖기도 했던 홀리필드, 그는 이 시대에 기억될 자격이 충분한 '세기의 철권'이다.
스포츠투데이 김광선 KBS 해설위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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