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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퍼즐] 신이 내린 최고의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
작성 : 2015년 09월 13일(일) 23:52

신이 내린 최고의 복서 슈거 레이 레너드의 주요 경기 장면들과 그의 일대기를 그린 자서전 표지 이미지. /사진= 레이 슈거 레너드 자서전 표지 이미지(중앙). 경기 장면 캡쳐(좌,우)

[스포츠투데이 김광선의 복싱킹] 슈가 레이 레너드(Sugar Ray Leonard)가 어떤 선수냐고 묻는다면, 이 한마디로 그를 설명하면 된다. '복싱을 예술로 승화시킨 선수'


복싱의 역사 이래 누가 이런 찬사를 받을 수 있을까? 완벽한 테크닉, 정확하고 번개같이 빠른 펀치, 전광석화 같은 풋워크, 상대방의 움직임을 사전에 간파하는 동물적인 감각. 1980년대 웰터급·미들급 전성시대를 주도한 슈가 레이 레너드는 그런 복싱킹이다.

레너드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도시 윌밍턴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레이 찰스 레너드'다. '슈가'라는 별명은 전설적인 복서 슈가 레이 로빈슨(1921~1989)에서 따온 것이다. 로빈슨은 현대 복싱의 틀을 사실상 완성했고, 복싱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받는 복서다. P4P(Pound for Pound - 체급을 통틀어 순위를 정하는 것) 개념도 그로부터 시작됐다는, 한마디로 '복싱 아이콘의 시조'로 꼽힌다.

레너드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 참가하여 라이트웰터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후, 화려한 아마추어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프로로 전향한다. 이때까지 아마전적은 68연승을 포함해서 150전 145승(75KO) 5패.

프로로 전향한 후 그는 3년간 무패의 전적으로, 1979년 푸에르토리코의 천재복서 윌프레드 베니테즈와 WBC웰터급 타이틀매치를 펼친다. 마지막 운명의 15라운드, 단 1초도 쉬지 않고 주먹을 날리는 양 선수, 레너드의 양 훅이 베니테즈의 턱에 적중한다. 이것으로 시합이 끝난다. 신이 레너드를 선택한 것이다.

슈거 레이 레너드,마빈 헤글러, 토마스 헌즈, 로베르트 듀란의 이야기를 다룬 책과 DVD 표지 이미지. / 사진 = 2008년에 출간된 George Kimball의 Four kings 책 표지 이미지 (좌). 1990년에 만들어진 DVD 표지 이미지(우).


당시 웰터급, 미들급에는 레너드를 제외한 전설의 3인방이 있었다. 링의 도살자-마빈 헤글러, 디트로이트의 저격수-토마스 헌즈, 돌주먹-로베르트 듀란이 복싱의 흥행을 주도하고 있었다.

1980년 11월 25일. 로베르트 듀란과의 2차전에서 듀란이 경기를 포기하는 장면. /사진 = 유튜브 영상 캡쳐(1차전 : https://www.youtube.com/watch?v=ugdPzhZSgKk / 2차전 : https://www.youtube.com/watch?v=VpEJK4Bbc9U )


1980년 첫번째 빅 매치는 파나마의 영웅, 돌주먹-로베르트 듀란과의 방어전이다. 결과는 듀란의 15라운드 판정승. 레너드는 이 시합에서 프로생애 첫 패배를 경험한다. 절치부심, 레너드는 5개월 후 듀란과 재시합을 갖는다. 결과는 8회 TKO. 레너드는 리매치에서 승리를 거둔다.

1981년 9월 16일. 토마스 헌즈와의 웰터급 통합전. 레너드가 14회에서 토마스 헌즈를 실신시키는 장면. /사진 = 유튜브 영상 캡쳐(https://www.youtube.com/watch?v=pGzmZde6Pgc )


듀란의 리매치에서 승리한 레너드는 1981년 10월 라스베이거스에서 숙명의 라이벌 토마스 헌즈와 웰터급 통합전을 가진다. 지금까지 열렸던 수많은 라이벌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최고로 꼽는 시합이다.

레너드의 우세를 점친 미국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헌즈의 우세를 점친 전문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천재복서들은 달랐다. 두 선수는 서로 아웃복싱의 천재들이었고, 테크닉은 지상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승패는 14회에서 갈렸다. 레너드는 초반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헌즈를 14회 KO로 실신시켰다.

1987년 4월 6일. 마빈 헤글러와의 대결. 최종판정으로 레너드가 헤글러를 이기는 장면./ 사진 = 유튜브 영상 캡쳐(https://www.youtube.com/watch?v=cTCePWPn16I )


이제는 마지막 라이벌전 헤글러와의 대결이다. 1만 5336명 관중이 경기장을 찾았고, 수익만 약 82억원에 달했다. 경기는 한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75개국에 동시에 생중계되었다.

무하마드 알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ALI', 복서 짐 브래독의 이야기 '신데렐라맨', 복싱을 통해 '아메리카 드림'을 상징화한 영화 '록키', 배우 겸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연출작이자 그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안긴 영화 '밀리언달러베이비', 부성애를 통해 감동을 전한 영화 'The Champ', 세계 챔피언에 도전하는 두 형제의 감동 실화 'Fighter' (왼쪽부터 시계방향). 이처럼 액션,갈등,성장,감동 등 극적인 요소가 많은 복싱은 수많은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 사진 = 영화 포스터 이미지.


전문가들은 헤글러의 절대우세를 점쳤다. 하지만, 분위기는 달랐다. 레너드는 자신을 괴롭힌 두란과의 경기처럼 아웃복싱 스타일로 치고, 불리하면 클린치를 하는 전법으로 헤글러의 러시를 막아냈다. 헤글러는 묵직한 정타를, 레너드는 많은 펀치를 상대방에서 날렸다는 분석이 있었고, 최종판정은 레너드의 승리였다.(이 경기 이후, 헤글러는 은퇴를 선언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슈퍼타이틀 3체급을 석권한 레너드는 이후 1988년 WBC 슈퍼미들급 도니 랄롱드를 꺾고 4체급을 제패한다. 이후 라이트헤비급마저 손에 넣으면서 당시로는 전무한 5체급 타이틀을 보유한다.

레너드는 복싱선수로는 최초로 1억달러를 번 선수로 기록되고 있고, 1980년대 세기의 복서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레너드가 세기의 선수로 기록되는 이유는 당시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영웅인 윌프레도 베니테즈, 로베르트 듀란, 토마스 헌즈, 마빈 헤글러를 이긴 단 한 명의 선수이기 때문이다.

그는 복싱실력만큼이나 사생활도 모범적이었으며 신사였다. 그가 남긴 "상대를 쓰러뜨리는 건 내 주먹이 아니라 나의 냉철함이다"라는 말은 그가 왜 '권투의 교과서'로 인정받는가를 대변한다.

실베스터 스탤론은 1976년 자전적 이야기를 시나리로 쓴 영화 '록키'에서 주연 록키 발보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고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록키 발보아는' '록키5' 이후 16년 만에 만들어진 속편이다. /사진=영화 '록키 발보아(2007)' 포스터(좌). 스틸이미지(우)


레너드는 1991년 테리 노리스(미국)에게 패하여 라이트헤비급 타이틀을 빼앗기고 은퇴한다. 6년 후 다시 링에 돌아왔으나 엑토르 카마초(푸에르 카마초)에게 패하고 말았다. 프로 전적은 40전 36승(25KO) 1무 3패.

은퇴 후 레너드는 NBC TV에서 배우 실버스터 스탤론과 함께 젊은 권투 경쟁자들의 프로그램 ‘콘텐더’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스포츠투데이 김광선 KBS 해설위원 SPORTS@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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