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윤상길의 스포츠톡톡]"드라마틱하다"-승패를 가늠하기 어려운 스포츠 경기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순간에 승패가 뒤집어지기도 하고, 어부지리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그래서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말도 생겼다.
버저 비터의 짜릿함, 연장전 추가시간에 터진 역전골, 9회말 2사 풀카운트에 장외로 날아간 역전 만루 홈런, 자력우승은 물 건너갔는데 경우의 수로 금메달을 따는 경우 등등 돌발 변수가 많은 분야가 스포츠의 세계다.
소재 찾는데 골머리를 앓는 시나리오작가나 드라마작가들이 이 드라마틱한 스포츠 세계의 이변을 외면할 리 만무다. 그렇게 제작된 영화나 TV드라마는 무수히 많다. 그 분야의 한 장르로 자리할 만큼 스포츠는 작품의 중요한 소재로 쓰인다.
스포츠영화는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여 재현한다는 점에서 사실성이 담보되고, '영상'이란 수단을 통해 스포츠의 또는 스포츠맨의 당면 문제를 구체화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다. 스포츠영화는 드라마투르기에 따라 제작되기 때문에 드라마의 기본 요소인 재미, 감동, 교훈을 관객에게 전해준다. 실화이거나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짐으로 스포츠에 대한 신뢰감 또한 높여준다. 물론 창작물이기 때문에 상상으로 만들어진 작품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 최초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국가대표'(2009 개봉) (왼쪽).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한국 여자 핸드볼대표팀 선수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 개봉)'. 스키점프, 핸드볼... 비인기 종목의 열악한 환경과 선수들의 투혼과 열정을 감동으로 그려낸 영화 '국가대표'는 800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4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사진=국가대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영화 포스터
'각본 없는 드라마'에 대항해 '각본 있는 드라마'로 승부를 건 작품들이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2009년에 만들어진 김용화 감독의 '국가대표'이다.
국가대표는 모든 현역 선수의 목표이다. 은퇴 선수에게는 훈장이며, 꿈나무들에게는 글자 그대로 꿈이다. 하지만 이 국가대표는 인기 종목에 국한된 측면이 강하다. 비인기 종목에서는 '감'이 멀어진다.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종목에서 국가대표가 되어보았자,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세계 랭킹 변두리에 주저앉아 있다는 이유로 올림픽 같은 국제대회에 출전하기도 어렵다. 설혹 출전이 허락된다 해도 만만치 않은 출전경비를 마련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이래저래 '찬밥 국대'다.
영화 만드는 사람도 체육인만큼 머리가 좋다. 이 '찬밥 국대'를 영상을 통해 '진수성찬 국대'로 바꾸어 놓는다. 영화 '국가대표'는 그런 영화다.
국가대표 코치 방종삼(성동일). 온갖 감언이설로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칠구(김지석), 밥(하정우), 재복(최재환), 흥철(김동욱) 을 급조한다. / 사진=영화 국가대표 스틸이미지
영화 '국가대표'가 선택한 종목은 '스키점프'다. 때는 1996년, 전북 무주가 배경이다.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정식 종목 중 하나인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급조된다. 코치는 어린이 스키교실 강사 출신인 방종삼(성동일). 스키점프의 스펠링도 모르는 방 코치는 온갖 거짓말로 선수를 모은다.
코치의 감언이설에 속은, 스키점프가 뭔지도 모르지만 한때 스키 좀 탔다는 이유로 뽑힌 이들이 모여 국가대표팀이 결성된다. 친엄마를 찾아 한국에 온 입양아 밥(하정우), 여자 밝힘증 환자인 나이트클럽 웨이터 흥철(김동욱), 고기집의 숯불 담당 재복(최재환), 할머니를 봉양해야 하는 소년 가장 칠구(김지석) 봉구(이재응) 형제까지, 영화이어서 용서되는 황당한 선수 구성이다.
변변한 연습장도, 제대로 된 보호장구나 점프복도 없이 오토바이 헬멧, 공사장 안전모 등만을 쓰고 맨몸으로 훈련하는 선수들의 모습. /사진=영화 '국가대표' 스틸이미지
훈련이 시작된다. 연습장도 없는 '맨땅에 헤딩하기' 식이다. 보호장구가 없어 오토바이 헬멧, 공사장 안전모를 쓴 모습은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이다. 나무 꼭대기에 줄을 매달고 비행 연습을 하고, 달리는 승합차 위에서 스키 점프 자세 잡기, 놀이공원 후룸라이드에서 뛰어내리기 등 비과학적 막무가내 훈련의 연속이다.
하지만 점차 그들은 선수다운 모습을 갖추고, 하늘을 나는 순간을 행복해한다. 스포츠의 매력은 성취감을 느끼는데 있다는 것을 이 황당한 영화가 보여준다.
그렇다고 영화의 결말은 우승이거나 일등이거나 하는 일반적 해피엔딩이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세계대회에 출전하지만, 그들에게 안겨진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심이 전부이다.
실제로 선수들은 점프대의 스프링 쿨러가 고장 나면 고무 호스로 직접 물을 뿌려가면서 연습할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생활비 및 훈련비를 충당하고 대회에 출전할 때도 비싼 점프복을 살 돈이 없어 찢어진 부분을 기워 입어가며 경기를 치러왔다고 한다. 롤러 훈련을 하고 있는 김현기 선수./ 사진=YTN '사람속으로' 방송화면 캡쳐
영화는 이처럼 드라마틱한 설정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준다. 영화 '국가대표'는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대표다!"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다. 그리고 영화가 지닌 '흥행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8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고, 2010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작품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출연배우들 여럿이 각종 영화상에서 배우상을 받았다.
영화에서 보듯이, 스포츠는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자양분이다. '기적'을 보게 하고, '스키점프'란 소재가 말하는 '도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도약'의 사전적 의미는 '몸을 위로 솟구치는 일',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과를 이루어낸 스키점프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습. /사진=SBS '나는 국가대표다' 방송 캡쳐(위). 영화 '국가대표' 스틸이미지(아래)
스포츠는 "인생은 두 번 살지 않기에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이 비슷한 일상을 사는 것보다 오늘보다 나아진 내일을 사는 것이 조금 더 재미있고 의미 있다"라고 '도약'을 우리에게 권유하고 있다. 소설 '북회귀선'의 작가 헨리 밀러는 "성장은 뜻밖의 어둠 속에서도 도약할 때 이루어진다."라고 설파했다.
영화 '국가대표'의 꿈은 20여년이 지나 현실이 된다. 영화 속 1996년 '스키점프' 국가대표가 이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당당하게 '국가대표'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국가대표2'에 캐스팅된 배우. 오달수 오연서 하재숙 진지희 김예원 김슬기 (시계방향)/사진=스포츠투데이 DB
영화 '국가대표'가 5년만에 2편 '국가대표2'로 관객을 만난다는 소식이다. 이번에는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인 국가대표 창단 과정을 모티브로 한다는데, 어떤 '도약'을 보여줄 것인지 기대된다. 조연 같은 주연 오달수가 코치로 등장하고, 오연서 하재숙 김슬기 김예원 진지희 등이 선수로 라인업 되고, 곧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란다. '각본 있는 드라마'가 또 어떤 '각본 없는 드라마'로 우리에게 재미와 감동, 그리고 교훈을 선사할런지 기다려보자.
스포츠투데이 윤상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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