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박철성 칼럼] 올게 왔다. 삼성화재 감독 신치용도 결국 밑천이 드러났다.
프로배구 삼성화재가 벼랑 끝에 몰린 것. 2014-15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5전3승제)전, 홈에서만 2연패. 그것도 두게임 모두 단 한 세트도 잡질 못했다.
우리끼리 얘기로 승부는 9부 능선을 넘어갔다. 애제자 김세진(OK저축은행 감독)의 상큼한 반란. 그래서 팬들은 열광하고 있다.
그나저나 이번 시즌 챔피언결정전엔 ‘만수(萬手)’ 신치용의 수(手)가 먹히질 않았다. 백약(百藥)이 무효였다. 1차전을 내준 뒤 어떡해서든 승부를 원점으로 만들겠다던 그였다. 팬들은 기대를 했다.
2차전을 앞두고 OK저축은행 선수들은 가볍게 몸만 풀었다. 반면 삼성화재는 경기 직전까지 강도 높은 훈련. 결과는 세트스코어 0-3. 안방에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속수무책, 제자에게 당해야만 했다. 신치용은 경기 후 “이제 밑천이 드러났다.”고 했다. 지친 모습이 역력했다.
3월30일, 2차전만 봐도 그렇다. 평소 그가 아니었다. 예전, 팀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신치용은 선수들의 운동화 끈을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그럴 때 꺼내든 카드는 회식. 말이 회식이지 ‘초절임’ 술판이었다.
이런 경우 삼성화재의 회식은 숙소근처 OO고기 집에서 시작되었다. 식당주인은 연방 싱글벙글.
이날 소주잔은 필요 없다. 맥주잔으로 통일한다. 모두 자리에 앉으면 바로 시작한다. 고기가 익는 것과는 무관하다. 소주를 ‘콸콸콸’, 가득 채운 뒤 ‘원샷’으로 장외훈련에 돌입한다.
물론 신 감독이 앞장선다. 따라서 열외는 없다. 이렇게 6~7순배 돌면 빈 소주병 박스가 수북하다. 마셔서 취하고 빈 술병 보고 취할 수밖에 없다.
이런 날 신 감독은 배구의 ‘배’자도 꺼내질 않는다. 신 감독의 멘트는 한결같다. “쭉쭉 들어.” 그리고 이튿날 오전훈련은 없다.
한 술 하는 필자가 예전 그 자리에 동석했다. 결과에 대한 상상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집에 엎드려 갔다.
신치용 주량은 이 바닥에 이미 정평 나있다. 각 언론사의 체육 기자들을 모조리 술로 제압했다. 일부 언론사 기자를 포함해 그에게 겁 없이 들이댔다가 포복하면서 귀가한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신치용 술자리의 마지막세트, 잔당(?)처리는 늘 생맥주 집이다. 인원수대로 500cc를 주문하곤 슬그머니 나간다. 모두들 그가 화장실을 간 줄 알고 있다. 이때 편의점에서 양주 한 병을 사서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나타나는 신치용이다. 그리고 바로 건배를 제의, 맥주를 3분의 1가량 마시게 한다. 그때까지 다들 아무생각이 없다.
여기서 신치용의 마무리 속공이 들어간다. 양주를 꺼내 생맥주잔을 가득 채우고 바로 잔을 권한다. ‘원샷’. 이건 말이 폭탄주지 양주나 다름없다. 마시다 화장실로 뛰어가는 사람이 속출한다.
술자리 얘기가 길어졌다. 이렇듯 여유가 있던 신치용이었다는 것. 김세진이 누군가? 이런 모든 걸 몸소 터득한 신치용의 애제자다.
누가 그랬다. 지나친 겸손은 교만이라고. 그런데 신치용의 겸손은 엄살이다. 김세진은 이미 그 엄살까지 마스터했다.
자고로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했다. “밑천 드러났다.”며 내 짓는 그의 한숨. 가는 세월이 야속하기는 하다.
배구계의 만수(萬手) 신치용. 그는 오래전부터 만 번째 수(手), ‘박수(拍手)’를 준비하고 있었다. “언제든 나를 뛰어넘는 후배가 나타나길 기다리겠다.” 한잔 되면 필자에게 늘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했다.
신치용은 지금 슬며시 기뻐하고 있다. 김세진이 애 제자기에 더욱 그렇다. 그는 진정 축하하는 마음으로 박수를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신치용은 이 시대 배구 판, 진정 살아있는 ‘만수’다.
스포츠투데이 박철성 스포츠칼럼니스트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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