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자신만의 독보적인 입지를 다져온 대체 불가 스타다. 귀여운 얼굴과 맑은 목소리, 탄탄한 발성과 무한한 감정 표현이 공존하는 배우, 수많은 작품 속 어떤 도전도 회피하지 않으며 꾸준히 성장해온 배우. '뽀블리' 박보영은 20년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우릴 실망시킨 적이 없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골드랜드'는 밀수 조직의 금괴를 우연히 넘겨받은 주인공이 금괴를 독차지하려는 탐욕과 배신 속에서 사투를 벌이는 금빛 욕망 생존 스릴러다. 박보영은 극 중 금괴 밀수 사건에 휘말리게 된 세관원이자 평범한 삶을 꿈꿨지만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히는 김희주 역으로 열연했다.
먼저 그는 "호기심, 못해본 걸 하고 싶은 욕심으로 장르물에 처음 도전했다. 특히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게 흔치 않아 이런 기회가 또 올까 싶더라. 보통 대본을 읽을 때 스스로를 대입해 상상하는데 희주 역은 잘 그려지지 않았다"며 "감독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내게 이걸 제안하셨을까 고민하다 만났다. '금괴를 손에 쥐었을 때 바로 돌려줄 것 같은 사람이 욕심을 내기 시작하고, 변해가는 모습이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지 않겠냐'고 하셔서 설득이 됐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장르물 첫 도전은 꽤 흥미로운 기억으로 남았다. "생각보다 되게 재밌었다. 처음엔 구르고, 애쓰고, 발악하는 것에 겁을 먹기도 했다. 그런 표현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액션도 많았다. 총도 너무 무거워서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팔에 근육통이 왔다. 다른 사람들은 이걸 들고 액션을 어떻게 하나 싶더라. 어떻게 하면 희주가 더 안쓰럽게 보일지 신경 썼다."
'흑화'한 인물을 그리는 만큼 체중 감량도 필요했다고. "원래 몸무게에서 3㎏ 정도를 뺐다. 보통 1~2㎏ 정도는 왔다 갔다 하는 편인데 3㎏은 생각보다 변화가 컸다. 유지하는 게 힘들었다. 운동을 해서 뺀 게 아니라 식단으로 빼서 힘이 없었는데 이게 희주를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된 듯싶다. 촬영 땐 감독님이 밉기도 했는데 끝나고 보니 잘된 일 같다. 먹고 싶은 걸 먹되 요만큼만 먹었다."
6~7개월 동안 희주로 살며 어둠의 끝을 찍은 박보영이었다. "저로 사는 시간보다 희주로 사는 시간이 더 많았다. 평소엔 '잘 가라, 끝!' 하는 편인데 어두운 거 그만해야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시기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할머니 같다, 기운이 없다고 하더라. 지금은 체중도 돌아왔다"면서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있다. 모든 게 다 만족스럽진 않더라도 계속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려 한다. 자신감을 갖고 지금까지 해온 것 같다"는 소회를 전했다.
극 중 우기(김성철)는 속을 알 수 없는 동업자로 희주와 함께하는 인물. "누가 캐스팅될지 굉장히 궁금했다"던 그는 "우기가 희주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감독님께 많이 여쭸다.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을 거라고, 그래야 우기가 배신을 할지 안 할지 시청자들이 고민하면서 볼 거라고 하시더라. 제가 생각하기엔 가족 같은 느낌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우기가 희주를 만나고, 희주가 브레이크가 된 거다. 희주도 사랑까진 아니지만 동지애는 느꼈을 것 같다"고 짚었다.
희주는 박호철(이광수)에게 쫓기며 아찔한 순간을 맞이하지만, 실제로 두 배우는 절친 사이다. "너무 친하다 보니 몰입이 안 되지 않았냐는 얘기도 하시는데, 영화 '돌연변이'에서 함께한 적이 있어 처음이 아니었다. 액션을 하다 보면 '진짜 괜찮다'고 해도 서로 배려하느라 조심하곤 한다. 광수 씨와는 워낙 가감 없이 얘기하는 편이라 좀 더 세게 해달라, 이건 좀 아프다 이런 말을 편하게 해서 조절이 잘 됐다."
또 다른 절친, 비리 경찰이자 희주의 친부 김진만을 연기한 김희원과의 호흡도 들어봤다. "감독님으로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제 고민을 잘 아시더라. 전 일단 저질러놓고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컷 하자마자 어떤 부분이 좋았다, 희주 같았다며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고 감사함을 전했다.
결말에 대해서도 생각을 밝혔다. "희주가 죽는 건 아니라고 희망회로를 돌리고 싶다. 마음에 안 들진 않는다. 희주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고, 승자처럼 보이지만 그 돈이 마냥 좋은 건 아니지 않나. 많은 희생이 섞인 돈인데 밤에 잠은 잘 잘까, 누군가 날 쫓을 것 같아 불안하진 않을까 싶었다. 완전한 해피엔딩이었다면 오히려 찝찝했을 수 있다. 시즌2를 염두하고 그렇게 하신 것 같은데, 후속에 관해선 아무도 묻지 않고 저희끼리만 얘기했다."
원톱 여주인공을 내세운 액션물에 도전할 의사도 있을까. "상상은 항상 해보는데 현실적으론 안 할 것 같다. 제가 그런 장르를 좋아하기 때문에 되레 할 수 없음을 느낀다. 풀샷에서 키도 크고 팔다리도 길어야 쾌감이 있을 텐데 그런 것도 없고, 장총도 못 쏠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2006년 연기를 시작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박보영. 성공적인 배우 생활을 두곤 "운이 따랐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데뷔할 때만 해도 쌍꺼풀 있는 선배님들이 미의 기준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쌍'을 예뻐해 주시는 시기가 왔다. 세상에 노력으로만 되는 일은 없을 거다. 조금의 운도 따라야 한다고 본다. 전 제가 운이 잘 따르는 편이라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여긴다. 굉장히 감사하면서 산다. 전엔 오디션을 봐야만 작품을 들어갈 수 있었다면 지금은 대본을 먼저 주시지 않나. 그런 시기도 남들보다 빨리 왔다고 느낀다. 20주년이라고 하니 많은 생각이 들더라. 매일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도 없지 않아 있다."
인생을 뒤집기 위해 금괴에 손댄 희주와 달리, 본인은 현재의 삶에 무척 만족한다고 말했다. "집도 있고 차도 있다. 옛날엔 서울에 있을 곳이 없어 이모 댁에 얹혀살고,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어 다녔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지금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산다."
박보영은 갓 데뷔했을 당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연기로 비판받은 적 없는 출중한 실력의 배우다. 그 기저엔 '뒤쳐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고, 제62회 백상예술대상 방송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털어놓은 바 있다.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가족들이 보내준 영상을 보니 소감을 진짜 길게 했더라. 당황스러웠다(웃음). 상투적인 말이지만 라인업이 너무 쟁쟁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생각했다. 근래 가장 많이 느낀 내용을 솔직하게 말한 거였다. 창피하고 싶지 않은, 쪽팔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제일 컸다고. 작품을 두고 알게 모르게 경쟁을 계속해야 하지 않나. '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도 했다. 그러다 '미지의 서울' 기획의도가 떠올랐다. 남의 인생이 내 인생보다 좋아 보인 적 없냐는 내용이 크게 와닿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작품을 선택해놓고 내가 이걸 왜 한다고 했을까, 두려움과 후회 속에 지내는 게 힘들었다. 그런데 제가 존경하는 선배님들께서도 같은 고민을 하신다더라. 충격이면서 위로가 됐다. 언젠가 '연기로 손가락질 안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대중들에게 실망을 드리지 않고, 동료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배우를 원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골드랜드'를 떠나보낸 그는 차기작에 대해 귀띔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20대 때 많이 하던 로맨틱코미디를 하면 재밌을 것 같다.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보통 장르를 중점으로 보진 않지만 지금은 밝은 거 위주로 보고 싶다 하는 정도다. 그런데 또 너무 하고 싶은 작품이 생기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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