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연상호 감독이 영화 '군체'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아포칼립스 세계관을 다시 한번 확장했다.
영화 '군체'(감독 연상호·제작 와우포인트)는 원인 불명의 감염 사태로 폐쇄된 건물 내 생존자들이 진화하는 감염자들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이번 작품은 연상호 감독이 '부산행' '반도' 이후 선보이는 좀비 장르이자,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돼 일찍감치 주목받았다.
지난 21일 국내 개봉돼 빠르게 200만을 돌파한 '군체'다. 연상호의 K-좀비물에 대한 존재감이 입증된 셈이다. 이미 '부산행'과 '반도'로 한국형 좀비물의 한 획을 그은 그이지만, 이번 작품의 출발점은 좀비 그 자체가 아니었다.
연 감독은 "좀비물로 시작된 건 아니었다. AI 알고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집단 속에서 무엇을 공포스럽게 느끼는 것인가를 고민했다. 보편적 사고의 합의라는 것이 개별성을 무력하게 만든다였다. 그런 순간들이 불편해지는 원천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고, 이것을 영화적으로 풀면 어떨까 싶었다"라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전작의 흥행에 따른 부담감보다 집단지성의 공포와 좀비를 연관시킨다는 작업에서 오는 재미를 먼저 느꼈다는 그다. 연 감독은 "좀비물로서의 부담감은 '반도' 때가 심했다. 사실은 '반도' 이후로 이런저런 작업을 많이 해서 또 좀비물을 한다는 느낌은 강하지 않았다. 오히려 '좀비물 할 때 되지 않았나' 싶었다"며 "반도 때는 '부산행'의 후속이라 부담스러웠는데, 이번에는 다른 세계관으로 이야기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나올 때는 자연스럽게 '부산행'과 비교하게 됐는데, 별개의 작품이라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영화 속 가장 충격적인 비주얼로 꼽히는 '업데이트하는 좀비'와 결말의 '앤트밀(Ant mill, 개미지옥)' 장면은 철저한 리서치와 과감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연 감독은 기묘한 좀비 동작에 대해 "아주 상징적인 동작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70년대 영화 '신체 강탈자의 습격'에서 외계인들이 인간을 발견하는 제스처가 있는데, 그게 진짜 기괴하고 기묘하다"라며 "기묘함이라는 것은 기세로서 완성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강시 얘기도 했고, 영화 '웨폰'에 대한 이야기도 하며 시그니처가 되는 동작을 연구했다"라고 밝혔다.
앤트밀 장면에 대해서는 "집단 지성을 검색해 보다가 개미의 생태를 보고 이 단어를 처음 쓴 것을 봤다. 자연스럽게 앤트밀과 연관이 됐고, 이것이 재부팅되는 과정을 직관적인 군무로 보여주고 싶어 무용 안무팀의 레퍼런스를 가져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좀비들의 집단지성은 하나인 형태인 반면, 인간의 집단성은 개별성이 포함되어 한 방향으로 가기 힘든 모습이다. 생명체는 돌연변이 같은 소수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 군체 역시 약점이 발견되면 한꺼번에 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변이를 하는데, 이 특징이 영화의 메시지에 영감을 줬고 그 중심으로 이야기를 써나갔다"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생존자 직업군과 인물들의 뚜렷한 낙차를 둔 이유도 명확했다. 연 감독은 "여기 나오는 인물 하나하나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문명을 대표하는 설정이면 좋겠다 싶었다"며 "학폭 관련된 설정도 인간 문명 안에서 발생하는 잔혹성을 포함했다고 생각한다. 인간 집단이라는 것이 대단한 문명 속에서 퇴화하고, 좀비는 진화하는 대비의 낙차를 줄이려고 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연대하기 힘들었던 인물과 연대가 시작되면서 끝나는 구상으로, '외톨이가 승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외톨이 즉, 생존자의 리더 캐릭터 권세정은 영화 속 중심이었다. 이를 이끈 배우 전지현은 이번 작품으로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했다. 연 감독은 "제가 해왔던 작품의 색깔이 있는데, 저는 전지현 배우가 관심이 있는 줄 몰랐다. 과연 할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의외로 전지현 배우가 평소 미국드라마나 특이한 작품들을 많이 보더라. 장르성에 대한 이해도와 대본 이해도가 높았고, 전작 '아신전'도 하셔서 장르물에 관심이 높다는 걸 알았다"라고 칭찬했다. 또한 "주인공이 지능캐다 보니 액션을 마음대로 할 기회가 많지는 않았지만 외향이 시원시원해서 지루함이 없었다. 샤를리즈 테론 같은 생각이 들었고, 다음에는 본격적인 액션 영화를 함께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다음을 기약했다.
오랜 콤비인 배우 구교환을 빌런 '서영철' 역으로 다시 낙점한 이유로는 그의 독보적인 재능을 꼽았다. 연 감독은 "비범한 배우고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표현도 썼는데, 기존 배우들과 굉장히 다른 지점이 있고 관객을 설득시키는 힘이 대단하다"라며 극찬했다.
연상호 감독이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탐구하는 주제는 결국 '인류애'와 '휴머니즘'이다. 그는 "그 부분이 궁금해서 계속 작업을 하는 것 같다. 이번 작업은 개별성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열등감 역시 휴머니즘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어두운 감정이냐 밝은 감정이냐의 차이일 뿐, 인간과 휴머니즘은 늘 재밌는 소재다. 나도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살고 있어서 인류애가 있다"라고 웃었다.
지치지 않고 쉼 없이 창작을 이어가는 연 감독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요즘이 가장 재미있기 때문이었다. 연 감독은 "전혀 지친다는 느낌을 받은 건 없다. 요즘이 제일 재밌다. 사실 영화냐 OTT냐 규정지어진 산업 때문에 고민하다가, 작년에 '이왕 아무렇게나 막 해보자'라는 생각에 오히려 재밌어졌다. '가스인간'이란 작품이 나올 텐데 그것도 안 해본 작업이다. 지난 10년과 다르게 앞으로 10년은 안 해봤던 독특한 것 위주로 해봐야겠다 싶다"라며 열정을 불태웠다.
마지막으로 '군체'의 향후 세계관 확장 계획도 전했다. 그는 영화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젊은 세대가 다채롭게 소비할 수 있도록 시도 중이다. 연 감독은 "군체는 이후의 이야기를 책의 형태로 내기 위해 작업을 끝낸 상태다. 설정북 형태로 나오기 위해 이미지 작업을 계속해나가고 있다"라며 "이 책을 기반으로 스토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FPS 등 게임의 형태로도 선보이기 위해 여러 팀과 회의를 하고 있다"라고 밝혀 '군체' 유니버스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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