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척박한 땅에 싹을 내린 한국 크로키가 어느덧 마흔을 넘겼다. 찰나의 선으로 담아내는 예술, 크로키가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서 대중에게 다가가기까지 지난 40년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한국 크로키회 공진모 회장을 통해 들어볼 수 있었다.
한국 크로키회 전람회가 올해로 40회를 맞이했다. 40주년을 기념한 이번 전람회는 41명의 작가, 100여점이 넘는 작품과 함께 했다. 40주년 기념전람회 첫날인 오늘(13일), 한국크로키회 공진모 회장은 스포츠투데이 취재진을 맞아 회원들의 작품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소개했다.
크로키라는 장르는 짧은 시간 안에 피사체의 특징을 캐치하고 이를 빠르게 그려내는 그림이다. 순간적인 집중력으로 작가의 시선에서 대상의 순간을 담아내는 찰나의 미학. 그렇기 때문에 공진모 회장은 "크로키는 가슴이고 추억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녹아들어서 순간에 발견되는 거다"면서 "일반사람들도 추억이 다 있지 않나. 화가들에게 추억은 모든 작업 자체가 '추억'인 거다"라고 크로키의 매력을 설명했다.
한국 크로키 40주년 전람회 / 사진=팽현준 기자
1985년 열린 제1회 전람회를 시작으로, 한국 크로키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불가피했던 때만 제외하고 매년 정기적인 전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정기적인 전람회를 여는 이유에 대해 공진모 회장은 "다 작품을 하는 사람들이라 작품으로서 소통하고 공감하는 자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나 이번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번에는 대작들을 회원들에게 요청했다는 공진모 회장은 "우리나라에서는 30호 이상을 대작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100호 정도의 혹은 100호에 버금가는 규모의 그림을 부탁드렸다"라며 이전보다 커진 스케일의 작품들을 자랑했다.
또한 "과거 크로키는 그림의 부속물이었다. 큰 그림을 위한 에스키스로 남아있거나 드로잉 정도로 남아있었는데, 이번 전람회에는 회화적으로 연결되는 걸 보여주는 작품을 원했다. 실제로 회화 작품이 많이 나왔다"라고 설명했다.
공진모 회장의 말처럼, 몇 십 년 전만 해도 크로키는 큰 작품을 위한 '밑그림' '습작' 정도란 인식 정도였다. 제목도 없이 '습작1' '습작2' 정도였던 크로키였지만, 이제는 하나의 장르로서 인정받고 있다.
한국 크로키 40주년 전람회 / 사진=팽현준 기자
변화는 대중의 인식에도 있었다. 공진모 회장은 꾸준히 대중과의 접촉을 늘리고 스며든 한국 크로키회의 노력도 크로키 대중화에 일조했다고 봤다. 공 회장은 "본래 누드 크로키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숨어서 그렸어야 했다. 작은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만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있는 야외에서는 모델을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입을 열었다.
'누드'라는 특성상 폐쇄적인 장르로 취급받지만, 공개적 크로키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대중과 접촉을 늘려갔다. 일종의 퍼포먼스가 된 것이다. 공진모 회장은 "한 번은 여의도 한강 공원이었다. 누드모델을 세워놓고 공개 크로키 행사를 진행했는데 중간에 경찰이 오면서 중단됐다. 그 사건이 큰 파장을 일으킨 거 같다. 그때부터 야외에서도 크로키를 해야 한다 생각했다. 청양의 식물원에서 초청받아 크로키 행사를 진행했는데, 그때 가수 서유석 씨가 오셔서 저희를 위해 진솔한 노래도 불러주셨다. 그러면서 식물원 구경을 오셨던 분들도 크로키를 곁에서 조용히 구경하시더라"고 회상했다.
이제는 대중들의 시선도 달라진 것을 느낀다고 말한 공 회장. 물론 여전히 핸드폰 사용 자제 요청 등 모델의 초상권 보호를 위한 조치도 취해야 하지만, "관람하시는 분들도 편안한 눈으로 봐주신다. 옛날에는 보시면서도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지금은 그런 거 없이 스스럼없이 보시는 거 같다"라며 변화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한국 크로키 40주년 전람회 강갑석 사무국장 / 사진=팽현준 기자
대중의 시선뿐 아니라 작가들의 화풍에도 40년이 넘는 긴 세월을 거치며 달라졌다. 공 회장은 "30~40년 전엔 꽤나 단순한 그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작품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소재도 다르고 재료도 다르다. 기초적인 펜, 연필만 아니라 아크릴, 먹, 콩테 등 사용하는 소재도 많이 발전했다. 옛날엔 유화나 수채화는 잘 안 했다. 색채가 살짝 들어가는 정도였는데, 점점 크로키가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스며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라고 봤다.
다만 공진모 회장은 '누드'만이 크로키의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크로키는 누드만 그려야 한다 생각하는 작가들이 많다. 크로키 전시장을 가면 거의 누드밖에 없지만 군중이라든지 차, 경마 등 피사체의 모든 걸 빨리 가슴으로 캐치해 내고 작품으로 환원하는 것이 크로키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공 회장은 후대 예술가들에게 크로키가 어떤 역할을 하고 이정표가 되길 바랄까. "크로키는 그림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기초소양이라 보시면 된다. 마음대로 발전시키는 건 다음 문제다. 스케치나 데생 등 손푸는 연습을 하면서 대상을 바라보는 게 많이 달라진다. 크로키를 체득해야 좋은 작품이 될 수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게 달라진다"라고 했다.
한국 크로키 40주년 전람회 김아원 작가와 공진모 회장 / 사진=팽현준 기자
K컬처가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가운데, 한국 크로키회도 글로벌시대에 발맞춰 해외로 뻗어나가고 있다. 공 회장은 "작가들도 해외 활동하시는 분들도 많다. 저도 매회 가을마다 어느 나라든지 스물일곱개 정도가 된다 전시 40회 정도다"면서 "김아원 작가는 일본에서 K컬쳐 이상부터 유수의 화가들을 제치고 호평을 받기도 했다. 시립미술관에서 컨택한 경우도 있었다. 부회장으로 계시는 김종수 작가는 일본에서 준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럴 정도로 한국 크로키도 충분히 K컬처에 충분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라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끝으로 공진모 회장에게 한국 크로키 회장으로서 생각하는 목표나 청사진이 있을지 물었다. 공 회장은 "대한민국의 크로키라는 단어를 가지고 만들어진 첫 단체가 우리고 가장 오래됐다. 앞으로도 50회 100회까지 쭉 이어지면 좋겠다"면서 "단순히 스케치로만 남아있지 않고 크로키를 매개로 자신의 대작으로 이어지는, 생명줄이 되고 좋은 근육질로 살아남았으면 한다. 가슴으로 새겨진 추억으로 남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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