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배우 장동윤이 장편 영화 감독으로 나섰다. "작품이 자식같다"는 그의 말처럼 '누룩'에는 창작자로서의 고민과 열정, 인간에 대한 탐구 의식이 느껴졌다.
영화 '누룩'(감독 장동윤·제작 1031스튜디오)은 동네 사람들만 아는 소문난 양조장 집 딸이자 막걸리를 사랑하는 열여덟 소녀 다슬(김승윤)이 어느 날 막걸리의 맛이 변한 걸 느끼고 막걸리의 주재료인 사라진 누룩을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특별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해당 작품은 장동윤이 단편 '내 귀가 되어줘'를 거쳐 세상에 내놓은 첫 장편이다.
주연 배우로 현장을 누비던 때와 다른 무게감과 진중함으로 자리앉은 장동윤. 인터뷰 내내 그의 눈빛은 어느때보다 열정적이고 진지했다.
"배우로서 작품을 선보일 때는 마냥 신나고 재밌는 마음이 컸는데, 감독은 확실히 책임감의 크기가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 개봉하는 것만으로 감사합니다. 과정 하나하나 아주 힘겹게 고생하면서 하다보니까 '작품이 자식같다'는 표현이 깊이 와닿을 정도입니다".
장동윤은 준비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가장 바쁜 시기에 촬영을 준비하며 시나리오 작업도 했다. 사실 추진력있게 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긴 한데, '누룩'을 밀어붙이듯 아주 바쁘게 준비했다"며 "시간적 여유가 더 있었다면 좋았겠다 생각도 조금은 있다. 이태동 감독님이 절친한 동료인데, 도움을 많이 주셨다"고 털어놨다.
당초 시작은 블랙코미디 장르였다고. 장동윤은 과거 '김치로 사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속설에 기반해 특정 막걸리가 코로나19를 퇴치하면 어떨까란 상상력에서 '누룩'을 구상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동윤은 "내가 할 수 있는 규모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싶었다. 그래서 소재를 그대로 가져와 규모적인 측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믿음'이라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누룩이라는 게 문학적인 접근이나 비유적 표현을 할 때 그걸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누룩을 제목으로 붙이고 양조장 이야기를 다루지만, 객관적인 사물에만 집중하면 몰입이 안 될 수 있다. 누룩은 비유적인 표현이자 상징이었다"고 설명했다.
장동윤의 말처럼 영화 속 누룩은 주인공 다슬이 집착하는 사물이자, 믿음과 애정의 대상으로서 그려진다. 그런 누룩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순간 다슬은 피폐해지고 절망에 빠지게 된다.
장동윤 "누룩의 실체는 '믿음의 대상'이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그게 무엇이다고 얘기하기보다는 그자체로 받아들이기 원했다. 그 중에서 가장 적절한 건 가족에 대한 믿음과 사랑인 것 같다. 살아오면서 다슬이가 믿고 집착하는 대상이 누룩이다. 저에게는 가족에 대한 마음과 매우 유사하다"고 밝혔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를 쓰고 문학에 흥미와 소질을 보였다는 장동윤이다. 그는 "어릴 때 제가 문학을 좋아하고 시를 쓰는 것도 좋아해서 '국문과 가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 반응이 다 달랐다"며 "가족들 모습이 가장 배신감 느껴질 때도 있다. 나를 가장 잘 알고 봐왔는데, 응원해주시도 하고 어리석게 생각하기도 하지 않냐. 그런 모습을 극 중 다슬이의 아버지, 오빠 태도로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에선 '누룩'의 실체를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는다. 느껴지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들 뿐이다. 장동윤은 이를 무엇이라 정의하기보다는 관객의 몫으로 남겨두길 원했다. 그는 "어떤 이야기를 극적으로 포장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얘기하는게 제 스타일인 것 같다"며 "많은 감독들도 '내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다. 비로소 관객을 만났을 때 알게 된다'라고 하더라. 저도 그런 지점같다"고 얘기했다.
장동윤은 독학으로 영화를 공부하며 자신만의 연출 철학을 세웠다. 그는 "미술관에 가면 해설을 들으면서 미술을 볼 수 있지만, 해설 없이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지 않냐.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크리에이터 해설을 얼마만큼 하느냐가 저의 선택인 것 같다.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꽃 하나하나 의미가 있지만, 일단을 그대로 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대부분 감독의 명확한 설명을 원하더라. 솔직히 말하면 그게 재밌진 않다. 그래도 이 영화에 한정해서는 어쨌든 관객들이 원하는 거를 최대한 들어주고 싶다"고 솔직히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연출가로서의 장동윤의 철학은 심오하지만, 그 속의 인간에 대한 호기심, 따뜻한 시선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는 "제가 관심있었던 건 사람 이야기다. 감격을 얻는 순간에서 공통점을 찾자면 삶이 기쁘고 감사할 사람들이 기뻐할 이야기는 재미 없지 않냐. 객관적으로 봤을 때 기쁨과 행복, 감사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그 누구보다 기쁘게 살고 있는 것을 볼 때 감동이 크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갈수록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탐구랄까. 사람이 자기가 진짜 원하는지 모르고 사는 것 같아요. 특히나 대한민국 사회에선 모두가 정답을 원할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나도 원한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 같아요. 그런 생각들을 복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창작 활동이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이런 내면이 많이 투영되는 것 같아요".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장동윤은 "한 발짝 멀어졌다는 얘기를 하긴 했는데, '누룩'이라는 장편을 첫 장편으로 한 건 잘 한 것 같다. 나중엔 현실적인 다큐멘터리를 연출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 현실 이야기를 좋아한다. 단편 영화에서 실제 농인 분들의 사례를 조각조각 모아서 사실 기반으로 다룬 거였다. 그런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 당분간은 연출을 할 생각은 없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또 하게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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