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할 수 없다. 금기를 깬 순간 모든 걸 의심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2026년, MZ 호러 '살목지'가 명맥이 끊겨가던 공포물의 새 지평을 열었다.
8일 개봉한 '살목지'(감독 이상민·제작 더램프)는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히고, 재촬영을 위해 저수지로 향한 촬영팀이 검고 깊은 물속의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공포 영화. 단편 '함진아비' '돌림총' 등을 선보인 1995년생 이상민 감독의 첫 단독 장편 연출작이다.
작품의 모티브는 2022년 1월 MBC '심야괴담회'에서 공개된 이야기다. 사연자는 충남 예산군에 위치한 저수지 '살목지'에서 자신이 겪은 기이한 경험을 밝혀 시청자들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같은 해 10월엔 유튜브 채널 '돌비공포라디오'를 통해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전했다. 해당 에피소드는 조회수 117만을 넘어서며 현재까지도 '레전드 사연'으로 불리고 있다.
소재는 괴담에서 얻었으나, 영화는 내용을 새롭게 풀어간다. 먼저 기이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살목지 로드뷰 화면에 촬영한 적 없는 정체불명의 형체가 포착된다. 오늘 안에 반드시 재촬영을 마쳐야 하는 상황, 로드뷰 서비스 회사 '온로드미디어' PD 수인(김혜윤)은 촬영팀과 함께 곧장 살목지로 향한다.
수인의 행동 기저엔 살목지 촬영 후 행방이 묘연해진 선배 교식(김준한)이 있다. 평소 믿고 따르던 선배가 갑작스레 연락이 끊기자, 자신이 직접 그곳에 가 확인해 보겠다는 의지이자 용기였다.
하지만 적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고 했던가. 촬영팀 경태(김영성), 경준(오동민)과 막내 PD 성빈(윤재찬), 세정(장다아)은 수인에게 협조하진 못할 망정 골치를 더 아프게 한다. 얼마 후 이들은 경태를 중심으로 알 수 없는 일들에 휘말리고, 수인의 전 연인 기태(이종원)는 뒤늦게 그곳으로 달려간다.
'젊은 감독' 이상민의 감각이 녹아있는 영화다. 360도 파노라마 카메라의 활용, 과하지 않은 점프 스케어(깜짝 놀라게 만드는 연출 기법) 등 볼 만한 요소가 여럿 존재한다. 스크린엑스(좌우 벽면까지 확장한 3면 화면)로 느껴지는 저수지의 오싹함도 백미다. 공간이 주는 공포를 극대화하고자 한 시도가 몰입감을 더한다.
출연진은 베테랑 배우부터 MZ세대 신예까지 다양하다. 경력은 제각각이지만 연기는 특별히 흠잡을 곳 없이 매끄럽다. 선배들에게 뒤지지 않는 후배들의 담대한 연기가 눈길을 끈다.
그중 단연 돋보이는 건 김혜윤의 새로운 모습이다. 김혜윤은 주인공으로 극을 이끌어가며 처음 보는 건조한 얼굴을 선보인다. '어쩌다 발견한 하루' '선재 업고 튀어'로 능숙한 로코 연기를 해온 그는 '살목지'에서 '불도저에 탄 소녀'가 진화한 듯한 '어른 여자'의 면모를 표현한다.
다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공포물 마니아들에겐 싱거울 수도 있는 작품이다. 왜 인물들은 늘 답답한지,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문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지. 기존의 공식을 일부 답습한 모습은 뻔하다는 생각을 들게 할지도 모른다.
친절한 영화를 선호하는 이들 또한 갸우뚱할 수 있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 생략된 전사가 많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굳이 다 설명할 이유도 없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고 싶단 마음은 든다.
호러물의 스펙트럼 확장은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싶다. 그 나물에 그 밥, 다양성을 잃어가던 극장가에 반가운 작품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그어놓은 선을 벗어나지 않는, '적당히' '대중적으로'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다. 러닝타임 95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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