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태형 기자] 코미디언 김미화가 재혼 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근황을 전했다.
19일 방송된 MBN '특종세상'에는 가수 현대화와 코미디언 김미화가 출연했다.
현대화는 4년 전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그는 "친구들과 여행 가서 편의점을 가던 중 앞에 갑자기 큰 무언가가 튀어나와 놀라서 핸들을 꺾었다. 그 뒤로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그는 5m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로 척추뼈 6개가 골절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에 대해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힘들었다. 옆으로 돌아눕는 것도 못하고, 혼자서는 뭔가를 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현대화는 꾸준한 재활을 통해 보조기를 착용하고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됐지만, 온몸에 힘을 주고 집중해야만 조금씩 나아갈 수 있었다. 그는 "무릎 위까지만 감각이 제대로다. 무릎 밑으로 뒤부터 허리까지는 감각이 있는 부분도 있고 없는 부분도 있지만 피부 감각은 거의 없다"고 현재 상태를 전했다.
현대화는 사고 이후 발성 방법부터 다시 배우며 꾸준히 노래를 하고 있었다. 그는 "몸으로 노래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했다. 소리는 내고 있는데 답답한 느낌이 컸다. 다친 이후부터는 해소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재활을 거치면서도 노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재활했던 과정을 생각하면 생각하기 싫다. '할 수 있다'고 외치고 있지만,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집 밖을 한 발자국도 안 나갔다. 제 스스로 뭔가를 할 수 없다는 절망에 살았는데,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현대화는 "딸들은 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고, 저는 한국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고 했다. 성격 차이로 오랫동안 별거하던 전처와 이혼했고, 자주 왕래하던 두 딸은 전처와 해외에 거주 중이다.
그의 아버지는 제조 회사를 운영 중으로, 사고 전까지 현대화는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다. 지금도 틈틈이 일을 돕고 있다고.
아버지는 아들이 가수를 접고 사업을 물려받길 원했다. 현대화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계속 말을 해 왔다"며 아버지를 설득했다.
이어 김미화의 근황이 공개됐다. 김미화는 20년째 전원생활 중이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 엄마, 저하고 따로 비닐하우스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다. 돈은 없고 처음 서울에 입성해서 미아리 돌산에서 오래 살았다. 아버지는 공사판으로, 어머니는 밭으로 갔다. 부모님이 옆에 없으니까 힘들었다"며 형편이 좋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이혼 후 두 딸을 데리고 새 삶을 시작해야 했던 시절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김미화는 "그때는 모든 게 괴로웠다. 혼자서 그 무거운 걸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라며 "문고리가 보이는데, 당시에 몹쓸 생각이 들더라"라고 고백했다.
벼랑 끝에 선 김미화 가족을 일으켜 세운 사람은 지금의 남편이었다. 남편은 김미화의 아이들을 잘 보살펴 줬다. 김미화는 남편에 대해 "착하고, 배려가 깊다. 만약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이 사람은 우리 아이들을 잘 돌봐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막내딸은 "내 인생에서 기대해보지 못한 바위 같은 존재"라며 "이렇게 기댈 수 있고 조언도 들을 수 있고 믿을 만한 존재가 나에게도, 엄마에게도 생겨서 좋다"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이후 김미화는 장남의 집을 찾았다. 그는 "저희가 죽은 후에도 아들이 혼자 살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들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김미화는 아들에게 "죽음이 뭔지 알아?"라며 죽음에 대해 알려줬다. 남편은 "우리가 없는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다. 실수하는 걸 보면서도 멀리서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볼 뿐이지,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진 않고 있다. 사회생활 하는데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김미화는 "사실은 아들보다 남편이 불쌍하다. 자기보다 3일만 먼저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누가 자기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고 싶어 하겠나"라며 눈물을 흘렸다.
또한 김미화는 故 전유성을 떠올리며 "선배님의 (별세는) 정말 느닷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찮으신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 몰랐다.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지셨다. 화장터에 갔는데도 믿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전유성 선배님이 지리산 행복학교의 고문이셨는데, 선배님이 안 계시는 그 공간을 저희 부부가 채우게 됐다. 선배님을 그리면서 자주 내려와야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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