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적당한 스트레스는 건강한 원동력이 된다 하던가. 배우 산들은 무대와 관객에 대한 '두려움'을 기꺼이 안고 무대에 서고 있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데스노트'(제작 오디컴퍼니)는 사신의 노트를 주워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되려는 고교생 야가미 라이토, 그리고 그를 막으려는 명탐정 엘(L)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다.
이번 시즌에 처음 합류한 산들은 구부정한 허리와 목, 어슬렁거리는 발걸음, 나른한 분위기 등으로 자신만의 엘을 완성했다. 이러한 모습 덕에 원작 속 엘을 그대로 구현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시즌을 이어가고 있다.
호평에 행복감을 드러낸 산들은 자신만의 엘을 만들고 연기하는 데 있어 다른 배우들과 비교하거나 차별점을 두려 하진 않았다. 다만 "이 친구가 어떻게,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명탐정이 됐고 그전에는 어떻게 살아왔을까를 계속 고민하고 상상했다. 엘에 대해 만들어 가고 상상하다보니 무대 위에서 표현하고 있는 지금의 엘이 나온 거 같다"라고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다고 원작 만화나 애니메이션 속 엘을 특별히 의식하려 하진 않았다고. "제 머리에는 이미 애니메이션의 엘의 모습이 구체화돼 있었다"면서 "이미 제가 좋아하는 엘의 모습을 살리려 했다. 그래서 (산들의 엘이) '애니메이션의 엘 같다'란 얘길 많이 해주신 거 같다"라고 했다.
그가 연기적으로 살리려했던 엘의 모습, '제스처'에 있었다. "얘는 '왜 이렇게 쭈그려 앉아 있을까' '왜 손가락으로만 집을까' '대인기피증처럼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하게 됐을까' 이런 모습을 좀 중점적으로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트라우마가 분명 있었을거란 생각을 했다"라고 짚어줬다.
산들이 '데스노트'를 먼저 접한 것은 학창 시절 인기였던 애니메이션이었다. "'너무 충격적이게 '센세이션하다' 생각될 정도의 작품이라, 저에게 좋은 이미지였다. 생각할 수 없는 표현하신 거지 않나. 노트에 사람 이름을 적으면 죽는다는 게 너무 크게 다가와서 꼭 하고 싶다, 욕심난다는 게 있었다"면서 "저는 혼자 애니메이션 보는 걸 좋아한다. 무대에 서게 돼 제 입장에선 '성공한 덕후'라 할 수 있을 거 같아 너무 즐겁게 하고 있다"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작품은 지난해 10월 개막했다. 그 기간 동안 산들의 엘에도 여러 피드백을 거치며 변화가 있었다. "공연 초반쯤 엘을 너무 나타내고 싶어서 뭔가 나른함과 엉뚱함과 천재적인 모습에 욕심이 나서 대사를 너무 느리게 한 거다. 좀 당겨도 좋을 거 같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 했다.
그렇다면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필요하다고 스스로 느꼈을까. 산들은 "계속 찾아나가야 할 것 같다. 뭔가 아직까지 공허함이 있는 거 같다. 100% 채워졌다는 느낌이 아니라 뭐가 부족한지를 계속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하면서도 "당장의 저에게 있어서는 100%의 마음을 다해 무대에 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3면 LED 무대로 관객을 압도하고 있다. 배우에게도 인상적인 면이었는데 "저도 객석에서 봤을 때 처음 '데스노트'라는 글자가 적히는 순간부터 현장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 순간부터 끝날 때까지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다른 작품들과 다른 '데스노트'만의 매력을 전했다.
앞으로 살짝 기울어진 무대 바닥은 LED와 함께 몰입도를 배가시키는 요소 중하나다. 그래도 배우 입장에선 연기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 산들은 "처음엔 되게 무서웠다. 경사인데 할 수 있을까? 걱정됐다. 경사무대에서 뛰어야하고 노래도 불러야 하고, 그렇다보니 평평한 연습실 바닥에서도 숨이 차서 죽을 거 같은데 경사라니, 걱정이 너무 컸다"라고 털어놓았다.
걱정도 많았지만 4개월이 지난 지금은 "여유가 생기더라. 경사로 느껴지지 않는다. 적응이 좀 잘 된 거 같다"라며 너스레 떨었다.
작품이 가진 매력만 아니라, 대중이 기존에 알고 있던 '산들'과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단 점에서 산들에게 '데스노트'는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산들이란 사람을 많은 분들께서 마냥밝고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고 그런 이미지로 생각을 하시지 않나. 그래서 ('데스노트'가) 더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생각됐다"라고 밝혔다.
물론 한편으론 걱정도 있었다. "사람들이 아는 내 모습은 저걸 텐데? 이런 모습을 보여줬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실지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면서도 "어떻게든 걱정을 깨 보자, 그래야 앞으로 뭔가를 할 때 저를 믿어주시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정 반대되는 모습을 표현해서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산들이 그리는 '최고의 모습'은 배우가 캐릭터 그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그 역시 관객에게 그런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러나 2012년부터 서 왔지만 뮤지컬 무대는 산들에게 아직도 어려운 곳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좀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더 여유가 생기고 다르겠지란 생각을 막연하게 했는데, 아니더라"라고 토로했다.
무대와 관객이 무서운 건 여전하지만, 생각하는 폭과 보는 시야는 훨씬 넓어졌다고. "예전에 한 선배님이 '관객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란 얘길 해주신 적 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아직까지 관객분들이 무서워요. 이 작품을, 그리고 저를 보러 와주신 분들께 좋은 공연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무서운 거 같아요. 그런데 그런 부담이 안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계속해서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는 거죠.
무서움을 견디며 무대에서 좋은 공연 보여드릴 수 있다면 일을 하는 것에 있어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