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 '효자종목'으로 불리는 쇼트트랙에서도 여자 3000m 계주는 한국 선수단에 가장 많은 금메달을 가져다 준 종목이다.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1998 나가노, 2002 솔트레이크시티, 2006 토리노 대회까지 4연패를 이뤘고, 2010 밴쿠버 대회에서는 석연찮은 판정으로 실격됐지만, 2014 소치, 2018 평창 대회에서 다시 2연패를 달성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개인 기량과 선수들 간의 찰떡 호흡이 있었기에 가능한 성과였다.
다만 평창 대회 이후 한국 쇼트트랙은 여자 3000m 계주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2022 베이징 대회에서는 네덜란드에 금메달을 내주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개인 기량에서는 여전했지만, 호흡에서 흔들리는 모습이 나왔다.
원인은 빙판 바깥에 있었다. 대표팀 에이스 최민정은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1000m 종목에서 고의충돌 의혹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이후 심석희와 호흡을 맞추지 않았다. 같은 경기에 출전하더라도 두 선수가 연달아 뛰는 경우는 없었다. 힘이 좋은 심석희가 스피드가 뛰어난 최민정을 강하게 밀어줄 경우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할테지만, 한국은 이러한 이점을 포기하고 여자 계주 경기에 나서야 했다.
한 마음이 아닌 상태에서 무섭게 발전한 캐나다, 네덜란드를 상대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2024-202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월드투어에서는 1-6차 대회 내내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을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올림픽 시즌을 앞두고 여자 쇼트트랙팀의 주장을 맡은 최민정은 결단을 내렸다. 다시 심석희와 호흡을 맞추기로 한 것이다. 한국 쇼트트랙은 여자 3000m 계주에서 예전과 같은 위용을 되찾았고, 2025-2026시즌 월드투어 1차 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무대에서도 기대했던 모습이 나왔다. 19일(한국시각) 이탈리아 밀라노의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결승. 한국은 마지막 5바퀴를 남겨 두고 3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앞서 네덜란드 선수가 넘어지는 상황에서 최민정이 가까스로 충돌을 피했지만 스피드가 줄었고, 그사이 캐나다와 이탈리아가 1, 2위로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마지막 5바퀴에서 한국의 대역전극이 시작됐다. 터치 과정에서 심석희의 강력한 푸시를 받은 최민정이 2위로 올라섰고, 마지막 주자 김길리는 2바퀴를 남기고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를 제치고 선두로 도약했다. 이후 김길리가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한국의 금메달이 확정됐다. 심석희의 푸시와 최민정의 추월로 시작된 역전극이 김길리의 마무리로 완성된 것이다.
최민정과 심석희는 태극기를 들고 빙판을 돌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최민정에게는 4년 만의, 심석희에게는 8년 만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힘든 시간이 있었던 만큼 금메달의 감격은 더욱 컸다.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는 최민정과 심석희, 그리고 국민들의 마음 속에 금메달 이상의 감동을 주며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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