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1998년 데뷔해 어느덧 29년 차 배우가 됐다. 쌓아온 시간만큼 필모그래피도 풍성해졌다. 조인성이 아니었다면 '휴민트' 조 과장은 누가 해낼 수 있었을까. 꼭 맞는 옷을 입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지난 11일 개봉한 '휴민트'는 비밀도, 진실도 차가운 얼음 바다에 수장되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이 격돌하는 이야기. 조인성은 극 중 국제 범죄를 추적하는 국가정보원 블랙 요원 조 과장 역으로 열연을 펼쳤다.
'모가디슈'에 이어 류승완 감독과 또 한 번 호흡을 맞춘 그는 "함께하는 이유를 가볍게 이야기하자면 사는 동네가 가까워서일 가능성이 높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서 스킨십이 많다. 절 끊임없이 지켜봐 주셔서 좋다. 제게 '나이가 들면서 오는 변화가 있다'고 하시더라. 그 과정을 담고 싶으신 것 같다. 작업하시는 방식이 되게 재밌다. 케미가 잘 맞는다."
본인은 아직 감독이나 제작엔 생각이 없다고. "그분들께서 더 대단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으신 거다. 전 감독님의 가까운 동료이자 두 번째 관객으로 제 역할을 한다. 본격적인 프로듀싱을 하겠단 마음은 현재로선 시기상조"라고 설명했다.
호평을 얻은 '휴민트' 속 담백한 연기는 '백지상태'를 위해서였단다. "힘을 점점 더 많이 빼게 된다. 관객들이 제 얼굴을 통해 각자의 감정을 투영할 수 있도록 연기해야겠단 생각이다. 노희경 작가님의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통해 많이 배웠다. 전 있는 그대로를 다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필요 없는 대사다' '처음부터 힘줘서 연기하면 대사에 방점을 찍을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이 쌓여서 영향을 받았다. 그런 방향성을 갖고 연기하려 노력 중이다."
반면 류 감독의 강점으로 꼽히는 액션엔 "잘 모른다"며 손사래를 쳤다. "별다른 기술이나 남들이 모르는 저만의 스킬은 없다. 감독님의 액션은 워낙 뛰어나지만 제 액션은 특별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저처럼 키 큰 사람도 많고, 배우 중에 못생긴 사람도 없지 않나. 감독님의 마법 같은 게 있지 않나 싶다. 전 무슨 차이인지 잘 모르고 캐릭터에 집중할 뿐이다. 왜냐 하면 진짜 다 어렵다. '모가디슈' 때도 운전하면서 칼을 휘두르는데 정말 힘들었다. '밀수'도 마찬가지였다. 감독님이 '왼팔도 같이 움직여야 각이 산다'며 디렉팅을 해주신다. 그렇게 하면 다 나오더라. 촬영 3주 전 액션스쿨에서 실제와 비슷하게 세팅해놓고 이틀 동안 데모 작업을 했다. 몸이 많이 힘들었다."
자신이 아닌 박정민과 신세경의 러브라인에도 입을 열었다. 평소 '멜로 장인'으로 명성이 높은 조인성이었지만, "이번 작품에선 멜로가 없는 게 좋았다"고 밝혔다. "어렸을 때 많이 했지 않나. 자가복제를 할 가능성이 높다. 보통 드라마에선 멜로가 빼놓을 수 없는 소재라 영화에선 장르적인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두 배우가 촬영할 당시 현장에 함께했단 이야기에도 입을 열었다. "절 부르신 건 '더블 체크'를 위함이었다. 해외 로케이션이라 이 공간에 다시 들어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멜로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있기에 조언은 제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국정원 동료로 호흡한 정유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이 많진 않았지만 훌륭한 액션이 나왔지 않나"라며 "유진이가 가끔 혼란스러워했을 때도 있던 것 같다. 그런 건 스스로에 대한 의심에서 나오는 거다. 네가 해석한 게 맞다, 충분하다, 의심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워낙 총명해서 캐릭터를 잘 만들어내더라. 극 중에서 저희는 서로 의심도, 견제도 많이 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사람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냈다고 생각한다"고 치켜세웠다.
조인성은 함께한 배우들에게서 전해진 미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촬영장에서 동료들을 살뜰히 챙긴 선배의 모습으로 정평이 나있는 바, 그는 "누가 보면 종교인인 줄 알겠다"고 농담하며 "우리 엄마가 보면 '웃기고 있네, 네가 무슨' '조싸가지'라고 하실 것"이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일하는 공간이지 않나. 제가 어렸을 때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누가 절 그렇게 만든 게 아니고 스스로 느낀 감정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기에 누구든 소외되지 않게 하고 싶은 마음, 이 공간이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런 것들이 어른의 모습인 것 같다. 저도 좋은 어른이 되려고 노력한다. 물론 어머니 입장에선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휴민트'는 조인성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모든 것이 끝나야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감독님과 작업을 계속할 테니, 또 한 번 성장한 내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조인성은 평소 야구팀 한화 이글스의 팬으로도 유명하다. 이날 '휴민트' 천만 관객 돌파와 한화 우승 중 무엇을 더 원하냐는 유쾌한 질문엔 "일단은 '휴민트'가 천만을 넘었으면 좋겠다. 제가 여유가 있어야 누굴 응원하게 되는 것 같다.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 계속 한화 응원할 거다. 한화 팬분들께서도 야구 경기가 없을 때 '휴민트'를 보러 오셨으면 좋겠다"고 답변했다.
이어 "관객 입장에서 만족스러운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고 덧붙였다.
조인성은 올해 '휴민트'에 이어 영화 '호프', 드라마 '가능한 사랑'까지 총 세 작품을 선보인다. 그는 "최근 2-3년간 촬영을 계속 해왔다. 여기서 '무빙2'를 하면 1년이 또 흐른다. 아, '무빙2'에 제가 안 나올 수도 있는데…저만의 욕심일까요?"라며 "저도 스토리를 잘 모른다. '와, 나 없이 간다고?' 이런 생각도 든다(웃음). 장면이 많든 적든 어떤 식으로든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우스갯소리로 그런 얘길 한다. 류승완 감독님, 나홍진 감독님, 강풀 작가님. 강동구에 사시는 세 분께서 제 스케줄을 돌려쓰시고 있다고. 절 왜 찾으시는지는 잘 모르겠다. 감사한 마음에 흔쾌히 작품을 하게 됐다. 세 분 다 집요하신 건 똑같다. 그래서 그 수준에 도달하신 거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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