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연기를 안 하면 난 뭘 할 수 있을까?"
'데뷔 30년 차' 배우 명세빈은 연기의 또 다른 재미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응원 덕분에 용기를 얻고 계속해 도전할 의지가 생겼다고. '국민 첫사랑'이란 이미지를 깬 그의 다음 도전은 무엇일지 기대를 모은다.
명세빈이 출연한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극본 김홍기 윤혜성·연출 조현탁/이하 '김 부장 이야기')는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한 중년 남성이 긴 여정 끝에 마침내 대기업 부장이 아닌 진정한 본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명세빈은 극 중 김낙수(류승룡)의 아내이자 인생 조력자 박하진 역으로 분했다. 후줄근하고 펑퍼짐한 옷차림의 전업주부 캐릭터는 명세빈의 기존 이미지를 생각하면 꽤나 색다른 모습이었다.
기존 이미지와 너무 다른 캐릭터를 맡게 된 것과 관련해 명세빈은 "감독님은 저에게 지혜롭고 소시민적인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다. '소시민'이라는 것에 한계를 안 짓고 일반적인, 평범한 주부의 마음을 얘기하시지 않았나 싶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서울 자가'라는 배경과 '소시민'이라는 단어가 이질적인 듯했으나, 명세빈은 "낙수도 그렇고 하진도 그렇고 (경제적으로) 잘 살던 사람들이라기보다, 열심히 아끼고 알뜰살뜰 모아서 마련한 집이다. 아직 대출금도 남아있어 화려한 집이 아니라 그들이 할 수 있는 걸 다해 마련한 집이란 개념이 저는 크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박하진'이란 캐릭터는 가정의 평화와 남편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명세빈은 "오래된 부부의 역할이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편안하게 부부의 모습을, 와이프의 역할을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한 부분이 있다"라고 밝혔다.
명세빈은 극 중 류승룡과 오래된 부부란 배경을 갖고 있기에 오랜 시간 함께 한 부부들만의 대화법에 집중했다. "류승룡 씨라 대본 리딩도 되게 많이 했다. 그걸 하면서 류승룡 씨가 음성녹음된 걸 보여줬는데, 진짜 부부가 '나 퇴직했어' '그래 잘했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는 내용이었다. '오래된 부부의 대화법은 이렇지 않을까?' 그렇게 얘길 해줘서 저도 그거를 많이 신경 쓰면서 연기하려고 했다"라고 했다.
의상 스타일링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명세빈은 "감독님이 분장이랑 의상팀을 단체로 조율하고 싶으셨던 거 같다"면서 믿고 따랐다고 말했다. "'진짜 엄마 같네' '예쁘진 않지만 엄마 같네' 싶었다. 모니터링하면서 회색티 입고 나온 장면이 진짜 엄마 같다고 하시더라. 그런 게 좋았다. 그런 옷을 입으니 자세도 걸음걸이도 정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이번 작품으로 명세빈은 따뜻하고 지혜로우면서 함께 울고 웃는 아내의 모습을 연기적으로 잘 그려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특히나 명세빈의 '지혜로운 아내' 연기가 가장 빛난 것은 퇴사하고 돌아온 '김낙수'를 팔 벌려 안아주는 장면이었다. '박하진'으로서 '김낙수'만 아니라 수많은 시청자를 울컥하게 만들고 위로해 극찬이 쏟아졌다.
명세빈은 "그 앞에 장난치면서 남편의 기분을 끌어올리면서 '아무렇지 않은 거야' '괜찮은 거야' 이런 걸 장난으로 표현하려고 했다"라고 연기 포인트를 설명했다. 이어 "팔 벌려 고생한 김 부장을 안아주는 건 대본에 있던 거다. 저도 너무나 감동받았고 잘 표현하고 싶다란 생각이 든 소중한 장면이었다"고 했다.
주변 반응은 어땠을지 궁금했다. 명세빈은 "처음에 친구들에겐 이런 작품 들어간다고 했을 때 시청자의 반응이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한 친구는 '재미있겠다'라고 하는 한편, 비슷한 상황에 놓인 친구는 '나의 현실을 드라로 마주해야 해?'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딱 두 개로 나뉘더라"라고 전했다. 시청자 반응도 비슷했던 걸 알고 있다고. 이어 "두 번째는 하진의 위로에 모든 사람이 위로를 받은 거 같다. 여자분들도, 각자의 입장에서 내 인생 열심히 살았다 하고"라고 했다.
명세빈은 앞서 출연한 예능들이 연기에 도움을 줬다면서도 "예능이 무섭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모습이 비칠까 봐. 제 의도와 다르게 보일 수 있지 않나"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예능을 하면서 실수해도 부족해도 나를 보이는 게 도전하고 싶다는 게 날 좀 더 풀어지게 한 것 같다. 그래서 '김 부장 이야기'까지 이어져온 것도 맞다. 신난 거 같다. 이런 게 연결되는구나, '닥터 차정숙'의 관심도 시청자도 좋아했고 그런 예능을 통해서 내 말에 기울여주고 내가 실수를 하든 괜찮구나란 걸 알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이번에 '김 부장 이야기'를 하면서 도움도 됐다"라고 했다.
이번 작품으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혔지만, 여전히 연기자로서의 고민도 남아있었다. "'다음에도 확실하게, 따뜻한 엄마 역을 해보고 (다른 캐릭터로) 변신하는 게 좋을까?' 그게 숙제다. 물론 제가 그런 작품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들어오는 걸 감사하게 받아야 하지만. 배우로서 고민이다"라고 고백했다.
사실 명세빈은 '돌싱'으로서 이번 역할을 소화하기 어렵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막상 해보니 주변 친구들이 말하는 것들, 부모님의 모습이 녹아있더라. 그리고 조금 실수해도, 다 표현하지 못해도 감독님이 디테일하게 디렉팅해주셔서 얘기해주시겠구나. 최대한 해보려 했다"면서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런 수다를 떨지 않나. 제 나이 때가 그런 얘기를 많이 할 나이다. 계속 그런 얘길 듣던 차에 (연기를) 할 수 있었다"라고 했다.
명세빈은 30대에 연기 공백기를 갖게 됐다. 그 당시 어떤 사건을 계기로 연기적으로나 가치관적으로나 변화가 생긴 것인지 궁금했는데, 명세빈은 그저 모두가 겪는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누구나 그럴 거 같다. 쉬고 있든 쉬지 않든, 작품을 보면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 그런 걸 항상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혼 후에 뭔가 크게 달라진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누구나 생각할 문제죠.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저만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해요. 연기자는 정년이 없지만 오래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나쁜 의미가 아니더라도 여러 이유로 다른 일을 하게 될 수 있잖아요.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전 마흔 초반이었던 것일 뿐이에요."
그러면서 연기자의 길을 계속해 걸어가기로 결심하게 된 일화도 들려줬다. 명세빈은 "아프리카에 NGO 프로그램으로 봉사활동을 갔었다. 연기자가 아니었다면 여기 와서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연기자란 재능이 있어서 이들의 상황을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역할이라 생각됐다. 그렇다면 난 연기를 안 하게 되면 뭘 할 수 있을까? 이혼과 힘듦과는 좀 다른 거 같다. 인생을 생각해 본 시기인 거 같다. 기술이 없다는 걸 생각해 보고 꽃을 배우던 차에 드라마 '닥터 차정숙' 대본이 들어온 거다. '그래도 계속해야 하는구나' '나는 연기를 좋아하는구나' 그러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된 거 같다"라고 했다.
그 시기의 캐릭터 변화가 호평을 받게 되자, 명세빈은 "좋은 쪽으로 이끌어진 거 같다. 그러면서 '김 부장 이야기'도 확실히 캐릭터의 변화와 도전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됐고 많은 사랑 주셨기에 용기내 할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든 거다. 그러면서 연기에 재미가 더 커진 거 같다"라며 연기 욕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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