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올해 한국 영화 천만은 없었다. 300만, 500만을 간신히 넘기며, 외화 틈에서 힘겹게 버틸 뿐이었다. '볼 영화가 없다'는 아쉬운 소리만 나온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한국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10월까지 전체 누적 매출액은 8344억 원으로 전년보다 1695억 원 감소했고, 전체 누적 관객수도 8503만 명으로 전년보다 1810만 명 감소했다.
이중 한국 영화 성과는 암울하다. 한국 영화 누적 매출액은 3912억 원으로 전년보다 2034억 원 감소했다. 누적 관객수도 4070명으로 2064만 명 감소한 수치다. '좀비딸'이 올해 한국 영화 흥행 1위, '야당'이 청불 등급 개봉작 중 최고 매출액, 관객수를 기록하며 흥행했지만, 히트작 부족으로 지난해보다 아쉬운 결과다. 매출액 500억 원 넘긴 올해 한국 영화도 '좀비딸' 단 한 편이다.
◆ 찬바람 부는 한국 영화
사실상 여름 성수기 '좀비딸' 흥행 이후 추석 성수기가 승부수였다. '좀비딸'의 563만 돌파라는 숫자는 한국 영화 분위기를 반전시킨 '킥'이였다. 큰 기대 속 '보스', 박찬욱 '어쩔수가없다'가 출발했지만, 300만을 채 넘지 못했다.
암울한 분위기는 연말까지 이어진다. 11월, 박스오피스 상위권 10개 중 한국영화는 4개뿐이었다. '나혼자 프린스' '세계의 주인' '퍼스트 라이드' '극장판 똘똘이: 아기공룡의 비밀'이 이름을 올렸다. 이마저도 중·하위권. 12월에도 한국영화 '윗집 사람들' '정보원' '콘크리트 마켓' 단 3개의 작품만이 머물고 있다.
상위권 싸움은 '위키드: 포 굿' '나우 유 씨 미3'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국보' '프레데터: 죽음의 땅'까지 '외화들의 리그'였다. 특히 '주토피아2'는 개봉과 동시 박스오피스 1위 자리에 장기 집권 중이더니 260만을 돌파하며 흥행가도를 탔다.
찬바람 부는 한국 영화 분위기와 달리, 외국 영화는 훈풍이 분다. 9월까지 누적 매출액은 3964억 원으로 전년 대비 4.7%(178억 원) 증가했다. 누적 관객 수도 3977만 명으로 3.1%(120만 명) 늘어났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 등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이 한몫을 했다. 2018년 이후 9월 외국영화 매출액 중 최고치를 기록한 일본 애니메이션이다. '극장판 체인소 맨: 레제편'과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N차 관람을 부르며 약 3개월째 박스오피스 장기 집권 중이다.
4DX, IMAX, 돌비 시네마 등 특별관 매출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 영향이 두르러 졌다. CJ CGV가 지난 6일 발표한 2025년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에 따르면 자회사 CJ 4DPLEX는 3분기 매출 340억 원, 영업이익 35억 원을 기록했다.
팬데믹 이후 '범죄도시2' '범죄도시3', '서울의 봄' '파묘' '범죄도시4'가 천만 트로피를 거머쥔 바다. 지난해까지도 한국 영화 '천만'이 탄생했으나, 올해 그 맥이 끊겼다. 어려운 상황 속 563만 돌파로 올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본 영화 1위가 된 '좀비딸'이었다. 하지만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564만명을 돌파하며 자리를 내어줬다.
◆ "볼만한 한국 영화가 없다"
영화 관계자들은 한국 영화 시장 분위기를 실감하며, N차 관람 문화 형성이 올해 흥행 척도였다고 판단했다. 한 대형 배급사 관계자 A 씨는 "최근 관객들은 '검증된 영화'를 선호하고 관람 전부터 입소문과 후기를 꼼꼼히 확인하려는 경향이 이전보다 강해졌다"고 말했다.
'볼만한 (한국) 영화가 없다'는 인식도 크다. 한 영화 관계자는 "새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의 흥행작을 '답습'하는 게 가장 큰 것 같다"며 "어느정도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니즈를 충족시켜줘야 하는데, 비슷한 작품을 계속해서 제작하면 결국 관객의 외면을 받는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배급사 관계자 B 씨도 "최근 시장에서는 관객 규모가 과거와 다르게 형성되면서, 하나의 작품이 압도적인 성과를 내는 구조보다 다양한 중급 규모 작품이 고르게 관객을 모으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 속 탈출구 마련이 절실한 가운데, 그 시도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B 씨는 "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세계의 주인', AI 기술을 활용한 '중간계', 저예산 상업영화 '얼굴' 등 새로운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신진 영화인을 발굴하기 위해 미쟝센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 영화배우, 감독, 투자배급사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지원도 활발히 이어지며 한국영화의 저변은 다층적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A 씨도 "최근 한국 영화의 참신한 실험적 시도와 독립·예술 영화 장르의 알찬 성과가 보다 증가하고 있으므로 극장가에서 한국 영화의 경쟁력도 다시 회복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얘기했다.
12월 3일 하정우 4번째 연출작 '윗집 사람들', 허성태 '정보원', '콘크리트 유토피아' 세계관을 공유하는 '콘크리트 마켓'이 나란히 개봉했다. 24일에는 추영우 전소니 주연 '오늘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31일에는 문가영 구교환 주연 '만약에 우리'가 개봉된다. 다만, 12월 17일 '아바타: 불과 재'가 전 세계 최초 개봉을 앞둬, 힘겨운 싸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