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신서영 기자] 리그 최강 불펜이 흔들리자 승리는 어림도 없었다.
SSG 랜더스는 14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4차전 삼성 라이온즈와 원정경기에서 2-5로 졌다.
이로써 정규시즌 3위 SSG는 4위 삼성에 '업셋' 당하는 쓴맛을 봤다. 반면 삼성은 정규 2위 한화 이글스가 기다리는 플레이오프로 향했다.
올 시즌 SSG는 단단한 투수진의 힘으로 3위 자리를 쟁취했다. 김광현이 부침을 겪었지만, 드류 앤더슨-미치 화이트로 이어지는 외국인 원투펀치가 안정적으로 마운드를 지켰다. 앤더슨은 올 시즌 30경기에 등판해 12승 7패 평균자책점 2.25를 기록하며 리그 정상급 성적을 남겼고, 화이트도 24경기에서 11승 4패 평균자책점 2.87로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무엇보다 불펜의 힘이 컸다. 올 시즌 SSG 불펜은 평균자책점 3.36, WHIP(이닝당 출루허용률) 1.27로 모두 리그 1위에 올랐다.
필승조로 분류되는 조병현, 노경은, 김민, 이로운의 활약이 크게 빛났다. 올해 SSG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조병현은 69경기 5승 4패 30세이브 평균자책점 1.60의 성적을 냈다. 베테랑 노경은은 77경기 3승 6패 3세이브 35홀드 평균자책점 2.14를 기록,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홀드왕을 차지했다.
트레이드로 올해부터 SSG에 합류한 김민은 70경기 5승 2패 1세이브 22홀드 평균자책점 2.97로 성공적인 시즌을 마쳤다. 이로운도 75경기 6승 5패 1세이브 33홀드 평균자책점 1.99로 성장한 모습을 보였다.
야구 통계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이 4명은 모두 리그 불펜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상위 5위 안에 들었다. 조병현이 3.37로 1위에 올랐고, 노경은이 2위(3.13), 이로운이 3위(2.58), 김민이 5위(1.99)에 자리했다. 이 4명이 SSG를 가을야구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SSG 타선은 타율 8위(0.256), 타점 9위(578점), OPS(출루율+장타율) 8위(0.706)에 그쳤다. 그나마 홈런은 5위(127개)로 중위권에 위치했지만, '홈런 군단'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부족했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반등 조짐은 있었다. 전반기 팀 타율 0.244로 전체 9위에 머문 SSG는 8월 월간 타율 4위(0.273)를 기록했고, 9월엔 2위(0.300)까지 도약하며 상승 곡선을 그렸다. 특히 지난 1일 한화와 최종전에선 9회말 터진 현원회, 이율예의 투런포 두 방으로 6-5 끝내기 승리를 따내면서 가을 분위기를 크게 끌어올렸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타선의 부진이 결국 플레이오프행 발목을 잡았다. 이 감독은 지난 9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2-5 패)을 앞두고 "타격감이 얼마나 빨리 올라오느냐가 키포인트다. 타격감에 따라 쉽게 가거나 고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1차전에서 SSG 타선은 총 6안타(1홈런) 3볼넷을 합작했는데, 득점은 고명준의 투런포로 낸 2점이 전부였다. 이후 SSG는 2차전에서 김성욱의 끝내기 홈런에 힘입어 4-3 승리를 챙겼지만 안타는 6개, 볼넷은 2개에 불과했다. 3-5로 패한 3차전에서도 6안타 2볼넷을 기록, 타격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시리즈 1승 2패에 몰린 SSG는 이날 4차전에서 타선의 반등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러나 끝내 타선이 터지지 않으면서 벼랑 끝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가을야구 들어 투수진도 무너졌다는 것. SSG의 투수 운용은 시작부터 꼬였다. 1차전 선발로 예상됐던 앤더슨이 갑작스런 장염 증세로 인해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SSG는 화이트에게 1선발 역할을 맡겼다. 그러나 화이트가 2이닝 6피안타(2피홈런) 3사사구 3실점으로 무너지며 가을야구 첫날부터 많은 불펜이 소모됐다.
2차전에선 김건우가 깜짝 선발로 나섰다. 앤더슨의 몸 상태가 좋아지지 않았고, 김광현도 컨디션 회복이 필요하단 이유였다. 김건우는 경기 초반 기대에 부응하는 완벽한 피칭을 선보였다. 첫 2이닝에서 6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포스트시즌 경기 개시 후 연속 삼진 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김건우는 4회 들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3.1이닝 3피안타 7탈삼진 2실점을 기록한 채 강판됐다.
SSG 타자들은 수비에서도 마운드를 돕지 못했다. 3차전에서 돌아온 앤더슨은 1회와 2회를 모두 삼자범퇴로 정리하며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앤더슨은 실책 하나에 무너졌다. 3회말 2사 1, 3루 위기에서 김성윤에게 안타를 맞았는데, 2루수 안상현의 송구 실책이 겹치면서 모든 주자들이 홈을 밟았다. 이후 계속해서 흔들린 앤더슨은 후속타자 구자욱에게 2루타를 맞으며 3번째 실점을 했다.
이날 4차전에선 SSG의 '영원한 에이스' 김광현이 5이닝 1피안타 3사사구 5탈삼진 1실점을 기록했다. 김광현은 올해 정규시즌에서 28경기 10승 10패 평균자책점 5.00으로 부진했지만 삼성의 타선을 상대로 호투하며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런데 SSG 타선은 삼성 선발 후라도에게 7이닝 2피안타 2사사구 9탈삼진 무실점을 대주며 더욱 꽁꽁 묶였고, 김광현의 투구는 빛이 바랬다.
SSG는 앞선 1-3차전에서도 삼성의 선발 투수를 좀처럼 공략하지 못했다. 1차전 최원태에게 6이닝 무득점, 2차전 가라비토에게 6이닝 3득점, 3차전 원태인에게 6.2이닝 1득점에 그쳤다. 승리한 2차전을 제외하고는 시리즈 내내 삼성 선발이 내려간 뒤에야 점수를 내는 양상이었다. 결국 불펜을 빠르게 끌어내는 게 승부의 관건이었는데, SSG는 상대 선발의 투구 수조차 제대로 늘리지 못했다.
베테랑도 침묵했다. 중심 타선에 포진한 에레디아-최정-한유섬 트리오가 모두 1할대에 그치면서 제 몫을 해내지 못했다. 4차전에서도 SSG는 선발 후라도가 내려간 시점부터 추격을 시작했다. 0-2로 뒤진 8회초 무사 1, 3루 찬스에서 박성한이 좌중간 2루타를 뽑아내며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박성한은 유격수 송구 실책으로 추가 진루했고, SSG는 무사 3루 승부처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어 나온 에레디아가 삼진으로 물러났고, 최정이 사구로 출루한 1사 1, 3루에선 한유섬이 삼진으로 아웃됐다. 결국 SSG는 희생플라이조차 올리지 못한 채 역전 찬스를 날렸다.
SSG 베테랑 타자들의 무기력한 모습은 삼성의 간판 구자욱과 확실히 비교됐다. 구자욱은 앞서 NC 다이노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 2경기, 이번 준플레이오프 2차전까지 15타수 1안타(타율 0.067)에 그쳤다.
그러나 3차전 들어 반등하기 시작했다. 구자욱은 팀이 2-0으로 앞선 3회말 2사 2루에서 앤더슨과 8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적시 2루타를 뽑아냈다. 4-1로 격차를 벌린 5회말엔 이로운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1사 2루에서 타석에 들어선 구자욱은 결국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투구수를 무려 17개나 뽑아내며 이로운의 힘을 전부 빼놨다. 이후 이로운은 후속타자 김영웅에게 2루타를 허용했고, 문승원과 교체되며 마운드를 떠났다.
정규시즌 내내 SSG는 타선이 1점을 내면 불펜이 틀어막아 승리하는 이른 바 '지키는 야구'를 했다. 그러나 가을야구에서 그 공식을 믿은 대가는 혹독했다. 투수가 실점하면 타선은 따라붙지 못했고, 불펜이 흔들리자 팀 전체가 무너졌다.
언제까지 투수진에 기댈 생각이었나. 개막부터 불안했던 SSG 타선은 벼랑 끝에서도 터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야구는 투수 놀음'이라고 하지만 SSG 타선은 이러한 핑계를 댈 수 없다. 이번 준플레이오프에서 SSG는 팀 타율 0.173(127타수 22안타) 4홈런 11타점 11득점 OPS 0.530로 최악의 타격 지표를 작성했다. 1-3차전 내내 홈런을 때려낸 고명준(OPS 1.050)을 제외하면 성적은 더욱 처참해진다.
SSG는 한때 '가을쓱'이라 불렸다. 가을이면 강해지는 팀, 그게 SSG를 대표하는 수식어였다. 2000년 창단 이후 5번의 우승(2007·2008·2010·2018·2022)을 차지했고, 2000년대 후반엔 왕조를 구축하며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2018년엔 정규 2위를 기록했지만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업셋 우승을 일궜다.
그러나 이는 최근 들어 옛말이 됐다. SSG는 지난 2022년 리그 사상 최초 와이어 투 와이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통산 5번째 우승을 수확했다. 2023년엔 올해와 같이 막판까지 치열하게 싸우다 힘겹게 페넌트레이스 3위를 차지해 준플레이오프에 선착했다. 그러나 와일드결정전을 치르고 올라온 NC에게 3연패를 당하며 쓸쓸히 가을 무대에서 퇴장했다. 2024년엔 KT 위즈와 5위 결정전에서 패해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실패했다. 그리고 올해 또다시 업셋의 희생양이 됐다.
SSG의 '가을 DNA'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과거의 영광은 여기서 멈췄다.
[스포츠투데이 신서영 기자 sports@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