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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마리텔'·'골때녀' 어디에…자취 감춘 방송 3사 파일럿 예능 [ST추석기획]
작성 : 2025년 10월 01일(수) 13:55

아육대 복면가왕(위) 골때녀 마리텔(아래) / 사진=MBC, KBS2, SBS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최장 10일간의 풍요로운 추석 연휴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명절을 맞이할 준비에 한창인 만큼, 방송가 역시 발 빠르게 편성을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전과 다소 달라진 모습이 눈길을 끈다. 일회성으로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안긴 파일럿 프로그램이 자취를 감췄다는 점이다.

◆ 파일럿, '복면가왕'·'마리텔'·'골때녀'의 시작

파일럿 프로그램이란 정규 편성 전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시범적으로 제작되는 프로그램으로, 프로그램 개발 분야의 베타 테스트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다. 대중들의 평가를 확인한 뒤 정규 편성 여부를 결정할 수 있고, 기방송된 프로그램에 비해 색다른 매력으로 소구된다는 장점이 있다.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이하 '슈돌')는 파일럿에서 정규 편성돼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2013년 11월 방송을 시작한 '슈돌'은 이휘재 아들 이서언·이서준, 추성훈 딸 추사랑, 송일국 아들 삼둥이(송대한·송민국·송만세) 등 수많은 스타와 자녀의 일상을 공개하며 1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롱런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파일럿 예능은 전통적으로 명절을 맞이해 론칭되는 경우가 많았다. MBC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이하 '아육대')는 2010년 추석 연휴 파일럿으로 방송한 뒤 좋은 반응을 얻어 명절마다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올 추석에도 어김없이 편성된 '아육대'는 수많은 아이돌그룹 멤버들이 육상, 권총 사격, 씨름 등 다양한 종목에서 실력을 뽐낼 예정이다.

MBC 파일럿 예능의 타율은 2015년 설 연휴에 정점을 찍었다. 당시 선보인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은 모두 호성적을 내며 두 달 뒤 정규 프로그램 전환에 성공했다.

스타들이 가면을 쓰고 노래 실력을 겨룬다는 '복면가왕'의 포맷은 '계급장을 떼고 덤빈다'는 기획 의도를 충실히 반영하며 신선함을 안겼다. '마리텔' 또한 스타들의 1인 방송 대결이라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예능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마리텔' 박진경 PD는 "국장실 테이블에 다리를 올려도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히며 당시 MBC 내 '마리텔'의 입지를 실감케 했다.

가장 최근의 사례로는 SBS '골 때리는 그녀들'(이하 '골때녀')이 있다. '골때녀'는 2021년 설 연휴 특집 프로그램으로 방송된 후 호평 속 같은 해 6월 정규 편성에 성공했다.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던 스포츠 예능에서 여성 출연자들을 전면에 내세운 선택이 통한 것이다. 현재까지도 평균 시청률 4~5%(닐슨코리아 기준)를 유지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전국1등 포스터 / 사진=MBC


◆ MBC서 달랑 한 개…파일럿 예능의 실종

그러나 2020년대 들어 방송 3사의 명절 파일럿은 급감한 추세다. 올 추석 론칭된 프로그램은 MBC가 선보일 '전국1등'이 유일하다. '전국1등'은 전국 각 지역이 명예를 걸고 같은 특산물로 맞붙는 국내 최초의 '특산물 챔피언스리그' 형식 프로그램으로, MC 박나래·문세윤·김대호가 출격한다.

파일럿 예능 급감 사태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가장 먼저 비용 문제를 들 수 있다. TV로만 예능을 접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 개인화된 기기로 다양한 콘텐츠에 접근이 가능해졌다. 결국 리모컨으로 '채널 고정'해야 하는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속 급속도로 성장한 OTT 시장도 위협으로 작용했다.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웨이브 등은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점을 내세우며 TV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됐다. 결국 TV 프로그램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밀려 화제성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이는 곧 광고 수익 감소와 방송사 재정 악화로 이어지고 말았다.

적자가 나날이 커지고 투자심리가 위축되는 가운데, 방송사 입장에서 새 프로그램 론칭은 전보다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일회성으로 끝나버릴지 모를 파일럿 예능은 더더욱 모험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와 관련 "TV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전체적으로 저조해지고, 시장이 줄어들면서 신규 예능을 제작할 동력이 약화되고 있다. 방송사의 재정적 문제로 인한 경영상의 압박도 존재하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명절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변화도 한몫했다. 현대 사회는 핵가족화와 개인주의 성향의 증가로 연휴를 각자의 시간이라 여기는 경향이 커졌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 같이 TV 프로그램을 감상하던 모습은 어느덧 과거가 돼버린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선 자연스레 파일럿 예능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게 된다.

한 방송국 관계자는 "최근 들어 연휴에 여행을 떠나거나 휴식을 취하며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이 시기엔 프로그램을 공개해도 관심도가 떨어지다 보니 오히려 손해가 된다"며 "연휴를 피해 편성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레귤러 프로그램으로 시작하는 게 더 화제성을 얻는다. 시청률이라는 수치로 피드백을 받는 입장이기에 파일럿 예능을 론칭하지 않는 것은 리스크 저하를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전했다.

이처럼 파일럿 프로그램의 감소는 사회 및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기회의 장'이던 파일럿이 자취를 감추며 새로운 시도, 나아가 과감한 도전을 찾아보기 힘든 방송가가 돼버렸다. 안정만을 추구하는 방향은 결국 신규 콘텐츠의 답보로 이어지며 대중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이를 타개할 회심의 '한 방'이 필요한 법. 명절 연휴 화제성을 되찾기 위한 방송가의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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