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박찬욱 감독이 오랜 시간 걸려 '어쩔수가없다'를 완성했다. 바라는 건 하나다. "신인 감독의 영화처럼, 백지상태에서 봐주시면 좋겠어요. 고정관념은 언제나 떨쳐버리고 싶은 문제죠".
영화 '어쩔수가없다'(감독 박찬욱·제작 모호필름)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이병헌)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 미리(손예진)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작가의 1997년 발표작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어쩔수가없다'는 일찌감치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현지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수상 가능성에도 무게가 실렸지만, 아쉽게 무관에 그쳤다. 작품은 토론토영화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30주년 기념 개막작으로 선정돼 주목받는 중이다.
박찬욱 감독은 상에 대한 아쉬움을 솔직히 털어놨다. 박 감독은 "상을 받는다는 건 흥행에 도움이 된다"며 "흥행에 목마른지 꽤 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흥행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가 아니다. 힘들게 만들었는데 많이 봐줬으면 좋겠는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쩔수가없다'는 실직한 가장 만수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그 과정에서 경쟁자 세 명을 살해하는데, 이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냐는 질문이 머릿속에 맴돌게 된다. 결말에 다다를수록 복잡해지는 질문, 양가적인 감정이 충돌한다.
박찬욱 감독은 "만수의 살인 동기를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건 어렵지 않다. 장기 이식이 필요하다든가, 완벽하게 전락해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거나, 아이들 밥을 못 먹이게 생겼다거나, 가족 중 누구의 목숨이 잃게 생겼다는 것을 만들면 관객을 이해시키는 것은 아주 쉽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좀 더 본질로 들어갔다. 그는 "여기서 핵심은 만수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거다. 그래서 만수라는 캐릭터에 이병헌이란 배우를 캐스팅해야 했던 이유다. 만수는 행동의 실행 과정이 어리숙하다. 또 상대를 동정하고 미안해하고 어떻게든 그 범죄를 피하려고 한다. 이를 보며 관객이 만수에게 마음을 줬다가 다시 거둬들였다가 반복할 수 있게 하는 것. 이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만수에게 과몰입한 정 많은 관객이 있을 것이고, 또 어떤 관객은 '연쇄살인범인데 저게 말이 돼?'라고 생각하기도 할 것이다. 상반된 두 마음이 평행선으로 가게 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목적은 뚜렷했다. "관객이 스스로 질문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다. 이는 박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우선하는 지점이라고 한다.
박찬욱은 "윤리적인 질문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거리를 얼마나 적절히 유지하느냐에 문제다. 거리를 차갑게 유지하는 영화들을 만드는 감독도 있지만 저는 그런 편은 아니다. 중요한 건 적절한 거리다. 물리적으로 글자 그대로 카메라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고, 그것을 포함해서 심리적인 거리 말이다. 때론 인물에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적절히 거리를 유지하며 다가섰다가 물러섰다를 반복하면서 감정적으로 영화를 음미하는 것이다. 궁극적인 질문을 하고, 답을 얻어보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거다. 이건 저의 영화 인생 전체의 목표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때문에 만수의 살인 범행은 아내 미리와 아들 시원에게 발각된다. 시원은 그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미리는 가족을 위해 비밀로 덮는다. 이는 원작과 다른 내용이다. 박 감독은 "이야기 전체적 터닝포인트다. 만수의 노력이 다 뭐가 되느냐, 헛수고가 되어버리는 상태"라며 "예전처럼 돌아가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만수의 유일한 취미이자 중요한 상징 분재에 대해서도 "나무 한 그루만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우주를 만드는 거다. 그러기 위해 잘라내고 구부리고 애지중지 관리해야 한다. 가장의 입장에선 보면 자신의 애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재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인위적이고 폭력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만수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너무 힘을 줘서 부러트리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구부리는데 그런 면에서 폭력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는 사물"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어쩔수가없다'는 만수의 실직, 다른 실직자들의 이야기로 시작이 된다.
박찬욱 감독도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까. 그는 "믿기지 않겠지만 이병헌, 손예진과 모이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지금 당장은 안정되어 있다고 하겠지만 예전에 그런 상황에 대한 걸 다들 많이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다들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잠재적인 그런 고용불안 상태가 계속 있다. 저도 마찬가지다. 저예산 영화를 찍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런 시기가 올테고 어떻게든지 항상 겁이 난다. 그게 이 영화의 바탕이 됐다"고 솔직히 말했다.
박 감독에게 '어쩔수가없다'는 그만큼 남다르게 다가온다. 약 15년 전부터 구상해 드디어 세상 밖에 내놓게 됐으니 '오랜 기다림의 끝'이나 다름없다.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마음은 여느 감독들과 똑같다. "'헤어질 결심' 결심으로 저의 작품 세계에 입문하신 분들이라면 조금 놀랄 거고, 전부터 저를 알아왔다면 당황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는 박찬욱 감독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이니까 훌륭하겠다는 기대,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별로 없어요. 다만, '이 사람의 영화는 이렇지'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그게 부담스럽고 떨쳐버리고 싶은 거예요. 사실 제목도 '도끼' '모가지'로 쓰고 싶어요. 선입견 없이 신인 감독 영화처럼 백지상태에서 봐주시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입니다. 피, 노출, 성적인 묘사, 뒤틀렸다, 변태적이다란 고정관념 말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늙은 변태란 얘기도 최악이지 않나요"(웃음).
[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ent@st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