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정예원 기자] 시대를 뒤집는 작품으로 또 한 번 새로운 색을 입었다. 어느덧 17년 차 배우가 된 이하늬가 1롤로 당당히 작품을 이끌며 인물을 완벽하게 해석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애마'(극본·연출 이해영)는 1980년대 한국을 강타한 에로영화의 탄생 과정 속,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어두운 현실에 용감하게 맞짱 뜨는 톱스타 정희란(이하늬)과 신인 배우 신주애(방효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하늬는 극 중 당대 최고의 탑배우이자 까칠하지만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아는 화끈한 성격의 정희란으로 분했다. 더 이상 노출 연기를 원치 않던 희란은 제작자 구중호(진선규)와의 갈등으로 새 영화 '애마부인'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먼저 이하늬는 "'애마'는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배우로서 정말 반가운 작품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무해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게 기뻤다"는 소감을 전했다.
희란 역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한 작품을 맡으면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까지 그 인물에 투영해서 살아야 한다. 때문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작품 위주로 고르게 된다"며 "특히 요즘은 한 작품 한 작품마다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그런 생각이 더욱 커졌다. 작품 선택도 어려워지고 더 절박해지더라. 그래서 '진짜 배우'가 되고 싶은 희란의 열망이 짠하기도 하면서 이해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하늬는 '80년대 최고의 톱스타' 연기를 위해 어떤 준비를 했을까. 그는 "찾아보니 '서울 사투리'라는 게 있더라. 어렸을 때 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게 기억이 나는 세대는 아니다. 이 '서울 사투리'를 어떻게 잘 녹일 수 있을지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며 "비음을 좀 쓰면서 약간 과장된 느낌으로 가봤다. 연기 톤 참고를 위해 영화 '애마부인'도 찾아봤는데 지금이랑 너무 다르고 재밌더라"고 말했다.
희란은 시종일관 화려한 스타일링으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레퍼런스를 수없이 많이 찾아보고 정말 많은 옷을 입어봤다"던 이하늬는 "예전 의상을 손대지 않고 셋업 그대로 입어보기도 했다. 당시에 예뻤던 옷들은 패턴, 소재가 과감하고 지금 입어도 예쁘더라.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맞구나 싶었다"고 떠올렸다.
극 중 이하늬는 방효린을 비롯해 진선규, 곽인우 역의 조현철과 놀라운 케미를 선보인 바 있다. 먼저 신예 방효린에 관해서는 "정말 단단하고 놀라운 배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효린 씨 입장에선 제가 얼마나 어려웠겠나. 그런데도 강단이 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저와 붙는 장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욕을 해보라'고 했는데, 정말 눈으로 쌍욕을 들은 기분이었다. 정말 놀랐다"고 웃어 보였다. 아울러 "감독님과 나눈 이야기를 스펀지처럼 쫙쫙 빨아들이는 배우였다. 앞으로의 행보를 주목할 만한, 애정하는 배우다"라고 후배를 아끼는 마음을 표했다.
또 "'애마부인'이다 보니 말을 많이 탈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래도 '밤에 피는 꽃' 같은 작품에서 타본 경험이 있어 어렵진 않았지만, 효린 씨는 처음이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과감하게 열심히 타더라"라며 "말 타러 세종시로 일주일에 몇 번을 가기도 했다. 속초에 가서 외승도 했다. 고생한 만큼 더 현실감 있는 장면들이 탄생하지 않았나 싶다"라고 떠올렸다.
진선규, 조현철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었다. 이하늬는 "진선규와는 보면 서로 '허허' 웃는 사이다. 일을 하면서 그렇게 호흡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다. 다른 작품 촬영과 일정이 겹쳐서 정말 고됐을 텐데도 놀라운 연기를 선보였다. 다 같이 기립박수를 치기도 했다"고 치켜세웠다.
이와 함께 "조현철에겐 '현철아, 난 너랑 연기해서 정말 좋다'는 말도 건넸다.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그냥 곽인우 감독 그 자체였다. 귀한 에너지를 받았고, 연기를 보는 것 자체가 행복했다"며 밝게 웃었다.
스토리의 모티브가 된 '애마부인'은 1980년대 우후죽순 나온 에로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전두환 정부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로부터 돌리기 위해 시행한 3S(Screen, Sports, Sex) 정책의 일환이기도 했다. '애마'가 여배우를 벗기는 데 혈안이었던 시대를 꼬집는 만큼, 희란이라는 인물이 갖는 의미도 남다를 터였다. 이하늬는 "희란은 이미 모든 걸 가진 사람이지만, 지키기 위한 침묵에서 벗어나 투쟁을 선언하고 변모한 캐릭터다. 이런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장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제강점기 때는 독립투사가 그런 역할이었을 거다. 시대마다 그런 인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침묵하지 말아야 할 것에 침묵하지 않는 것, 사회의 부당함을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희란에 매료됐던 이유였다"고 설명했다.
또한 "'애마'는 화려한 80년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투쟁 역사의 한 조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연기하는 내내 '내가 희란이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내 모든 걸 던지고 투쟁할 수 있었을까' 고민했다"며 "특히 출산을 하면서 후배들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 우리 세대가 당면한 문제들을 무시하지 않고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일종의 책무감 같은 게 있다"고 소신을 드러냈다.
이하늬는 '여배우에 대한 부당한 일을 실제로 겪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도 솔직하게 답했다. 그는 "왜 없겠나. 나는 끝물을 경험한 축에 속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며 너무 상처받은 적도 있었다. 폭력이 계속되면 굳은살이 생기는 것처럼 의견을 내는 것조차 하찮은 일이 되기도 하지 않나"라며 "이젠 부당한 걸 너무 참지 않아서 문제다(웃음). 어떤 부분은 부당하다고 말해도 아직도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애마'라는 작품이 필요한 것 같다. 투쟁의 역사는 인간이 존속하는 한 계속될 것 같다"고 짚었다.
아울러 "사회를 구성하는 모두가 각자의 고달픔을 갖고 있을 것이다. 출산 이후부터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다. 서로 미워하지 말고 조금씩만 연대해도 세상이 더 따뜻해질 것 같다"며 "시청자들에게 '애마'가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어떤 고민을 할 수 있는지 던져주는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하늬는 최근 불거진 '탈세 논란'에 대해 입을 열기도 했다. "법인을 세우면서 한 번도 위법, 불법을 저지른 적이 없다"고 강조한 그는 "최근 세무조사에서 견해 차이로 인해 일이 발생했다. 전력을 다해 금액을 납부했으며, 적법한 절차를 거쳐 상위 기관에 의뢰를 한 뒤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진행 중인 사안이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저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심경을 밝혔다.
만삭의 몸으로 '애마' 홍보 활동에 참여한 이하늬는 지난 24일 둘째를 품에 안으며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앞서 촬영을 마친 영화 '윗집 사람들'과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천천히 강렬하게'(가제) 두 작품으로 대중들과 계속해서 만날 예정이다. 그는 "'윗집 사람들'은 올해 하반기에 개봉한다고 하더라. '천천히 강렬하게'는 임신한 몸으로 촬영했다. 내년까지 몸을 다시 리뉴얼하고 재충전한 뒤 차기작을 골라야 할 것 같다"며 앞으로도 이어질 '열일' 행보를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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