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이상필 기자]달이 차면 기우는 법. 그동안 아시아 축구를 호령했던 수많은 스타들이 이번 대회를 통해 아시안컵과 작별하게 됐다. 노쇠화된 모습과 기대에 미치지 못한 활약으로 초라하게 아시안컵과 이별한 스타들이 있는가 하면, 나이를 잊은 활약으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마지막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도 있었다.
일본 축구를 아시아 정상으로 이끌었던 엔도 야스히토(감바 오사카)는 전자에 속한다. 엔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으로 자신의 마지막 아시안컵을 허무하게 마감하고 말았다. 엔도는 일본의 2010 월드컵 16강, 2011 아시안컵 우승을 이끈 핵심 멤버로 아시아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나 엔도도 가는 세월을 막을 수 없었다. 엔도는 체력에서 문제를 보이며 90분 내내 100%의 기량을 발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는 2014 브라질 월드컵과 이번 아시안컵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번뜩이는 재치는 여전했지만, 안정감이나 활동량에선 전성기의 기량을 재현해내기 어려웠다. 향후 그의 자리는 시바사키 가쿠를 비롯한, 신진 미드필더들이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우즈베키스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세르베르 제파로프(울산) 역시 이번 대회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북한과의 첫 경기에선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이후 경기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특히 16강을 결정지은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3차전과 한국과의 8강전에는 아예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다. 제파로프는 결국 벤치에서 팀이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과거 카파제, 게인리히 등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제파로프였기에, 경기에 나서지 못한 그의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대신 경기에 나선 라시도프의 활약이 준수했기에 제파로프로서도 불만을 가질 수 없었다. 비록 아시안컵에서는 쓸쓸히 물러났지만 새 행선지로 울산을 선택하며 K리그 잔류를 선택한 만큼, 한국 축구팬들은 앞으로도 제파로프의 활약을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축구와 '악연'을 이어갔던 자바드 네쿠남(오사수나) 역시 이번 대회가 마지막 아시안컵이 될 전망이다. 알리 다에이 이후 이란 축구에서 가장 큰 존재감을 보여준 네쿠남이지만, 아시안컵에서의 경기력은 자신의 이름값에 걸맞지 못했다. 네쿠남과 테이무리안이 동시에 노쇠화에 접어들면서 이란 축구는 중원의 세대교체라는 큰 숙제를 받아들게 됐다.
아시아 최고의 골키퍼로 꼽히는 알리 알 합시(위건) 역시 앞으로 아시안컵에서는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알 합시는 볼턴, 위건 등 잉글랜드 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골키퍼. 가와시마(일본)와 함께 유럽에서 활동하는 몇 안 되는 아시아 출신 골키퍼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만이 1승2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알 합시 역시 허무하게 대회를 마쳤다. 특히 호주와의 경기에선 무려 4골을 실점하는 굴욕을 맛보기도 했다. 그나마 쿠웨이트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클린시트를 기록하며 명예회복에 성공한 것이 위안거리였다.
반면 이들과 달리 마지막 아시안컵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선수들고 있다.
대표적인 선수가 차두리(서울)다. 차두리는 이번 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로 역할을 다하며 준우승에 힘을 보탰다. 한국의 오른쪽 측면을 지킨 차두리는 공격과 수비에서 모두 무결점에 가까운 활약을 펼치며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국가대표 은퇴가 너무 이른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비록 아시안컵은 준우승으로 끝이 났고, 앞으로 차두리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일도 없어졌지만, 우즈베키스탄전에서의 70m 드리블 돌파는 축구팬들의 가슴에 영원토록 기억될 것이다.
우승팀 호주에서는 팀 케이힐(뉴욕 레드불스)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케이힐은 호주의 아시안컵 첫 우승을 이끌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체력 관리 때문에 많은 시간 출전하지 못했지만, 3골을 기록하며 순도 높은 활약을 펼쳤다. 특히 중국과의 8강전에서 보여준 오버헤드킥은 이번 대회 최고의 골 장면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이미 케이힐은 선수생활의 황혼기로 접어들어 미국에서 프로생활을 정리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메이저 대회에선 만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의 정신적 지주, 유니스 마흐무드도 이번이 마지막 아시안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속팀이 없는 상황에서도 조국의 부름에 응한 유니스는 이라크의 4강 진출을 견인하며 자기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했다. 이라크의 2007 아시안컵 우승을 이끌었던 이 노장은 전성기가 지난 가운데서도 어린 선수들을 이끌며 인상적인 기억을 남겼다.
특히 이란과의 승부차기에서 대담하게 파넨카킥을 성공시킨 장면은 이번 대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3주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 아시안컵. 비록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많은 스타들을 아시안컵에서 볼 수 없게 됐지만, 이들이 아시아 축구에 남긴 업적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이상필 기자 sp907@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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