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근한 기자]울리 슈틸리케(63)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언행일치가 한국 축구를 울렸다.
슈틸리케가 이끄는 한국은 지난 31일 호주 시드니 스타디움 오스트렐리아에서 열린 2015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 호주와의 경기서 1-2로 패했다.
이날 패배로 한국은 55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 했다. 그러나 아무도 한국 선수들을 손가락질 할 수 없었다. 후반 추가시간 손흥민의 극적인 동점골 부터 120분 연장 혈투까지, 그들은 박수 받아야 마땅하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빛났다. 장현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해 호주의 예봉을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후반 0-1로 뒤진 상황에서 곽태휘를 최전방에 올리는 승부수까지 적중했다. 비록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준우승에도 감동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4개월 만에 자신이 추구하는 축구의 색깔을 확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불과 7달 전 참혹했던 브라질 월드컵의 기억을 깨끗이 씻어냈다.
무엇보다 슈틸리케 감독의 언행일치가 한국 축구를 울렸다. 제일 먼저 선수들의 마음을 울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새로운 감독이 부임하게 되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된다"며 "모든 선수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겠다. 선수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영혼을 울려야 한다"고 강조하며 공정한 선수 선발을 약속했다.
최근 몇 년간 한국 축구대표팀은 선수 선발의 공정성 논란에 시달렸다. 해외파와 국내파 선수들 간의 반목이 있다는 소문도 났고, 소속팀에서 출전하지 못하는 부진한 선수들이 뽑히면서 '의리 축구'라는 비판도 받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공정 선발의 의지를 몸소 실천했다. 그는 4개월 동안 전국 곳곳의 경기장을 찾아다니며 선수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K리그 클래식·챌린지·FA컵·대학리그 등 슈틸리케의 발자국이 찍히지 않은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외파 점검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최근 경기력이 떨어졌다고 비판을 받은 구자철도 직접 독일로 날아가 확인 후 선발했다.
이번 대회 최고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공격수 이정협도 슈틸리케의 꾸준한 원석 찾기의 산물이다. FA컵 4강전이 열린 상주 시민종합운동장까지 찾아가서 이정협을 마음에 담아 놨다.
베테랑의 대한 편견도 없었다. 대표팀 '주장'인 기성용도 지난 브라질 월드컵 실패 요인 중 하나로 베테랑의 부재를 꼽았다. 슈틸리케 감독 역시 이에 동의했다. 그는 "브라질 월드컵 부진은 베테랑 선수들의 부재라고 판단했다"며 "30대 중반의 선수들이 20대 초중반의 젊은 선수들에게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수비를 중시하는 슈틸리케 감독은 차두리·곽태휘와 같은 베테랑 선수들을 기용함으로써 수비에 대한 안정감을 더했다. 특히 차두리는 놀라운 스피드와 힘으로 오른쪽 측면을 지배했고, 어린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까지 해내며 대표팀을 하나로 뭉쳤다.
선수 선발에 관한 책임도 모두 자신에게 돌렸다. 슈틸리케 감독은 "열정이 있고, 배가 고픈 선수가 필요하다. 경험과 나이에 관계없이 발탁했다. 변화의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며 비판의 화살을 감독에게 돌렸다. 이런 언행일치를 보이는 감독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을 선수는 없었다.
또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축구팬들의 마음도 울렸다. 팬들은 지난 몇 년 간 대표팀의 내홍을 지켜봤고,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몰락을 보면서 많은 실망감을 가졌다. 이 분노는 월드컵 대표팀 입국장에서 '엿 투척' 사건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팬들이 바라는 대표팀의 모습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팬들은 점유율, 패스, 슈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승리가 중요하다. 어떤 날은 짧은 패스, 어떤 날은 공중 볼이 승리를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 결국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기는 대표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승리하는 대표팀을 위해 슈틸리케 감독은 수비를 강조했다. 그는 "수비에 집중하는 건 집을 짓는 데 비유할 수 있다. 어느 사람이든 지붕을 먼저 짓지 않는다. 기초를 탄탄히 받치고 지붕을 올린다"며 "공격을 잘하는 팀은 1승를 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을 차지한다"고 말하며 수비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이 역시 언행일치로 이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을 시작으로 무실점 행진이 이어졌고, 승리하는 대표팀이 만들어졌다. 골이 어떻게 들어가든 상관없었다. 어떻게 넣든 간에 골이 터지면 무실점을 기록한 수비력을 통해 승리했다.
수비진이 무너지면 김진현 골키퍼가 어떻게든 막아냈다. 김진현 골키퍼 역시 슈틸리케의 선택에 믿음을 보여줬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 아시안컵 주전 골키퍼가 김진현이 될 것을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공정한 선발과 승리하는 대표팀이라는 언행일치를 보여준 슈틸리케 감독은 결국 팬들의 마음도 울렸다. 최근 몇 년 사이 축구 팬들이 이렇게 한 마음 한 뜻으로 대표팀을 응원한 적은 거의 없었다. 우승 못 해도 끝까지 그를 믿어야 한다는 대다수 축구팬들의 외침은 저절로 생긴 것 아니다.
이제 슈틸리케 감독의 눈은 미래로 향해 있다. 그는 "앞으로 K리그 클래식 우승팀과 상위권 팀 선수들이 다수 뽑힐 수 있는 대표팀을 만들고 싶다. 단순히 대표팀이 아닌 K리그·유소년 축구 등 전반적인 한국 축구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불과 4개월 만에 자신이 뱉은 말을 모두 지켜낸 감독에게 4년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축구에게 큰 행운이다. 한국 축구를 울린 슈틸리케의 언행일치는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계속된다. 슈틸리케 감독이 했던 이 말도 꼭 언행일치가 되길 기원한다.
"한국 축구에 도약 가능성과 희망이 없었다면 나는 감독을 맡지 않았다"
김근한 기자 forevertoss@stoo.com
<가장 가까이 만나는, 가장 FunFun 한 뉴스 ⓒ 스포츠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