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김미현 기자]14년 동안 흘렀던 차두리(35·FC서울)의 태극마크 시계가 멎었다.
차두리는 지난 31일 오후 호주 시드니 오스트레일리아 스타디움에서 열린 개최국 호주와의 2015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몸을 아끼지 않는 활약을 펼쳤지만 1-2로 패하며 끝내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는 못했다.
차두리는 지난 2001년 생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후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멤버로 활약하며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서는 환상적인 오버헤드킥으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누리며 경기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지난 해 여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그라운드에서 뛰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해설위원으로 월드컵과 함께했던 알제리전 직후 그는 눈물을 쏟았다. 차두리는 "후배들이 고생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자신을 비롯한 선배들이 도움이 되지 못해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끼리 월드컵을 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드러냈다.
7개월 뒤 다시 한 번 태극마크를 단 차두리에게 이번 호주 아시안컵은 남다른 의미를 가졌다. 대회 전 차두리는 "아시안컵은 내가 국가대표로 뛰는 마지막 대회다. 아시안컵은 내게 또 다른 도전이다. 월드컵에서 많은 분들을 실망시켰는데 이번에 한국 축구의 다른 얼굴을 보여 주겠다"고 확신했다.
국가대표 은퇴를 앞둔 그는 자신의 기량을 뽐내 유종의 미를 거두는 것은 물론 무너진 한국축구의 돌파구를 찾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지 10여 년이 흐른 2015년, 차두리는 어느새 대표팀의 최고참이 됐다. 젊은 후배들 사이에 당당히 출전 명단에 올랐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선수들을 격려하고 이끌며 대표팀의 중심이 됐다.
정신력뿐만 아니라 실력도 녹슬지 않았다. 차두리는 조별리그 오만전과 8강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오른쪽 측면을 지배하며 골을 도왔다. 특히 우즈벡전에서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후반 교체 투입된 차두리는 연장 후반 70m 가량의 폭발적인 드리블 이후 손흥민에게 완벽한 어시스트를 연결하며 한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상대 수비를 스피드로 제압하는 그의 활약은 연일 화제가 됐다.
4강전 이라크전에서도 차두리는 과감한 오버래핑과 몸을 날리는 수비로 노장 투혼을 이어갔다. 이어 또 한 번 기습적인 드리블 돌파를 선보이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차두리가 지난달 31일 호주와의 아시안컵 결승전에서 드리블을 하고 있다. 차두리의 A매치 마지막 경기다./gettyimage
이와 같이 전성기 못 지 않는 활약을 보여준 차두리의 대표팀 은퇴가 더욱 아쉽기만 하다. 이제 차두리는 대표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우뚝 섰기 때문이다. 아버지 차범근과 선배 이영표를 비롯해 국민들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차범근 전 감독은 아들 차두리의 대표팀 은퇴에 대해 "아들이 평생 운동장을 뛰어다녔으면 좋겠지만 그것은 아빠의 생각일 뿐이다. 아들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결정을 전적으로 존중했다.
이영표 해설위원은 후배 차두리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한국의 아시안컵 결승행이 확정되자 이영표는 차두리에게 "내가 대표팀에서 은퇴할 때 차두리 선수가 내게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다. 이제는 내가 말할 차례인 것 같다. 차두리 선수, 고마웠고 수고했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축구 팬들도 차두리의 은퇴를 반대했다. 심지어 그의 대표팀 은퇴 반대 서명운동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그는 결승전을 자신의 마지막 축구여행이라고 말하며 묵묵히 은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한국은 지난 1956년 홍콩 대회와 1960년 한국 대회에서 단 2번 아시안컵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이후 55년 동안 우승을 하지 못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차두리는 2002년 월드컵 세대의 마지막 멤버이자 팀의 맏형으로서 숙원인 아시안컵 우승을 향한 완벽한 도전 기회를 잡았다.
결승전에서 차두리는 오버래핑의 진수를 보여주며 노련함을 보였다. 아시안컵 우승이 걸린 마지막 경기에서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수비에서는 육탄방어, 공격에서는 날카로운 패스를 연결하며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후반 추가시간 극적인 동점골에 이어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차두리는 제몫 이상을 해줬다.
은퇴 경기이자 대망의 결승전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거뒀지만 승패와 상관없이 차두리는 충분히 빛났다. 결승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마지막까지 불꽃 투혼을 보여준 차두리는 은퇴하지만 축구 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경기 종료 후 축구 팬들이 차두리에게 해줄 말은 단 한 마디 밖에 없었다. "차두리, 정말 고마워"
김미현 기자 dodobobo@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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