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투데이 임시령 기자] 45년 차 배우 이혜영이 고통 끝 '파과'라는 결실을 맺었다.
영화 '파과'(감독 민규동·제작 수필름)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이혜영은 극 중 레전드 킬러 조각 역을 맡아 수수께끼 같은 내면을 소화하고, 수준급 액션을 선보였다.
"이 여자가 가지고 있는 파워가 궁금했고, 그녀의 힘은 수수께끼 같았다"는 이혜영이다. 그가 그린 조각은 상실감을 겪고 불안정한 존재임에도 그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생존하는 인물이다. 초월적인 힘과 여유를 가진 수수께끼 같은 조각은 이혜영의 흥미를 자극했고, 그를 동화시켰다.
난도 높은 액션신도 소화한 그다. 벽을 타고, 구르고, 로프를 이용해 활강하는 장면, 총뿐만 아니라 비녀, 맨몸을 활용한 액션신에선 온몸을 내던졌다. 이혜영은 "(완성본을 보니) 상상했던 조각 보다 좋았다. 촬영 내내 불안했다. 부상은 계속 입는데, 다치기만 하고 보람이 없으면 어떡하나. 배우로서의 고독감이 몰려왔다"고 털어놨다.
이어 "부상 입고 회복이 안될까봐 그 걱정을 제일 많이 했다. 이 도전이 어떤 결과를 갖게 될까 싶었다. 일지도 매일 썼다. 주로 감독님 원망과, 현장에서의 어려움, 나를 괴롭히는 10가지도 넘는 상황들이었다. 그러면서도 한 구석에선 이 원망이 바뀌었으면 하는 절실함이 있더라"고 밝혔다.
고난도 액션만큼이나 그 속에 순발력, 감정을 넣어야 한다는 것도 이혜영에게 도전이었다고. 그는 "모든 게 다 힘들었다. 스턴트가 5바퀴 구르면 제가 3바퀴를 굴러야 감정이 맞지 않나"며 "아픈 감정 드러내지 않고, 뭐든지 쿨하게 할 것을 중점에 뒀다. 하지만 (그동안의 작품들 중) 제일 힘들었다. 감정을 기술적으로 한다는 것과 그러면서 액션을 순간 해야 한다는 순발력이 떨어지는 사람인데, 여기서는 한 프레임에 갑자기 요구되는 것들을 바로 표현해야 했다. '나 영화배우 맞아?'라는 것들을 새삼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파과'는 올해 초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 국내에서도 3일 연속 좌석판매율 1위, 동시기 개봉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1위라는 기록을 달성하며 주목받고 있다.
이혜영은 일찌감치 해외와 국내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호평이 나오자 "나의 힘으로 한 건가 싶다. 전 모든 것을 제약받았고, 모든 면에서 절제를 시켰다. 민 감독이 '너무 귀여워요. 지금 울려고 해요? 지금 감정 길어요. 짧게 해 주세요' 등 일일이 코치받고 절제받고 계산된 것이었다"고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민규동은 강철 같다"는 이혜영은 "전날부터 수정해 3개의 수정본이 쌓여있다. 100명 가까이 그렇게 약속하기로 나온 건데, 전 시작부터 다른 얘기를 하니까 많이 부딪혔다. 그런데 나도 내가 쓸모있는 배우가 되려면 민규동과 이 프로세스 안에서 살아남아야겠다 싶었다. 민 감독이 '나도 선배님이 내가 정해준 프로세스 안에서 인형처럼 하길 원하지 않는다, 이 속에서 선배의 프로세스를 찾으라' 하더라. 배우가 어떤 고통이 있어야 액팅이 나오는 거다. 그 속에서도 나는 민규동 작품을 통해서 이 프로세스 안에서 내가 살아남는 것이 앞으로 쓸모 있는 배우로서 모두와 함께 가는 것을 경험했다"고 프로의 자세를 드러냈다.
"누가 나 좀 통제 좀 해주세요라는 마인드로 살았어요. 가정과 아이가 생기고 더 연기가 안정적으로 잡아진 것 같아요. 심리적으로 불안정한데, 그나마 배우라 들켜도 이해되고 넘어가는 것이지 사실 불안하게 살았죠. 그게 연기라는 것을 통해 나를 사랑하게 하고, 즐거움을 줄 수 있게 된 거예요. 스스로는 힘들었어요".
45년 차 관록의 배우인 이혜영은 '파과'를 통해 내면적 불안함과 싸우고, 통제를 당하고 배움이란 고통을 경험했지만 "여배우로서의 늙음, 여자로서의 늙음을 다 떠나, 한 인간으로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역할도 마찬가지다. 상황보다 캐릭터가 중요한 것처럼. 배우도 늙든 젊든 한 인간의 존재로서 생각해 봐야 된다는 생각이 든다"며 소신을 전했다.
"배우라는 직업은 너무 고통스럽고, 괴로웠지, 사랑스럽진 않아요. 고통이 익숙한 사람이 배우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고통에 익숙해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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